실로 오랜만에‘태산같은 성은…’이라는 글귀를 접하고 마치 어릴 적의 유행가를 들은 것처럼 반갑기까지 했다. 입각소식 전갈에 감읍하며 안‘ 43시간’동수씨가 쓴‘충성 문건’의 한 구절을 읽자마자 옛날 광주의 한 구두닦이 소년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작은 도움을 준 나에게 편지 한 장을 가져왔는데 그 안에‘태산같은 성은에 보답’운운하는 표현이 있길래 그렇게 과장하면 안 된다고 타이른 적이 있었다.
어쩌다가 옛 유행가를 들었을 때 음절보다는 그 노래를 듣던 당시의 정황이 생각나듯‘충성 문건’에 대한 나의 첫 반응은 구두닦이 소년이었다. 안씨의‘충성 문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보았다. 구두닦이 소년의 편지를 반쯤 표절이라도 한 듯 내용과 문체가 비슷하다. 일국의 장관 생각이 구두닦이 소년 수준밖에 안되니 낮긴 낮다.
안씨의 유치한 글이 비서의 실수로 공개된 직후 서울에서는 장본인의 완강한 부인 속에 그 필자가 안씨냐, 아니냐로 논란이 심했다. 결국 안씨가 이틀만에 더 이상 거짓말의 꼬리를 늘일 수 없자 사실대로 고백함으로써 그가 손수 작성한 메모임이 드러났다. 그러나 안씨가 직접 쓴 것인지 아닌지는 하등 문제될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유능한 연설문 작성자는 항상 그 윗사람의 철학이나 평소 신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연설문을 사전 점검 없이 그대로 읽을 리 없고 부시 대통령도 자신의 이념에 상반되는 연설문을 수정 없이 낭독할 리 없다.
따라서 국민이 알아야 할 요체는‘충성 문건’의 저자가 누구냐가 아니라 정부 고위직의 임명권자와 피임명권자 사이의 분위기이다. 각료가 교체될 때마다 뉴스에 나오는 임명장 수여 사진을 보면‘충성 문건’이 아니라도 한쪽에서는 그 이상을 무언으로 요구하고 상대 쪽에서는 그 이상이라도 하겠다는 무언의 각오가 돋보인다.
입각이‘가문을 길이 빛낼’정도의 경사라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 모두 축하하고 기뻐할 일일 것 같은데 뉴스사진이 풍기는 뉴앙스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깝다. 임명권자는 국민을 위해 봉사해줄 적임자를 찾아서 기쁘고 각료가 될 사람은 국민을 위한 봉사의 기회를 감사한다는 느낌이 그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야 할 것이나 나는 한번도 그런 느낌을 가져보지 못했다.
이번 안동수의 법무부 장관 임명 코미디는‘새옹지마’의 교훈을 상기시킨다. 무엇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대신 얻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훨씬 더 많은 것을 잃는 경우도 흔히 본다. 만약 안씨가 임명을 받지 못했더라면‘가문에 수치가 될’웃음거리는 안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잠시 복을 얻었다고 너무 기뻐할 일도 아니고, 화를 당했다고 크게 서러워할 일도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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