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5월 ‘어머니의 날’이 지나면 6월엔 ‘아버지의 날’이 들어 있다. 신록의 계절답게 수액이 올라 때깔이 좋아 뵈는 종려나무 길을 걸으면서 나는 브라이언군의 옥중 편지를 떠올렸다.
그는 6년전 16세의 나이 때 다인종 갱단에 들어가 암흑의 생활에 빠져 있다가 순간의 실수로 백인 청소년을 사살, 지금은 교도소에서 종신형을 살고 있다. 그러나 자기 같은 실수를 하는 이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그는 교도소 안에서 학교 공부며 동료 수감자들의 지도와 상담하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다고 했다.
공개된 그의 참회 편지 한 토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사실에 들어가다가 나는 아버지와 맞부딪쳤다. 금방이라도 풀썩 쓰러질 것 같은 아버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슬픔과 수치심, 그리고 깊은 자책감의 눈물이 얼굴을 적셨고… 내 삶의 자세가 다른 수감자들과 다른 이유는 단 한가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내 곁을 지켜주시는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것이 축사 안의 99마리 양보다 잃어버릴 뻔한 1마리 양을 더 소중히 여긴 구속주와의 관계이며 부자간의 윤리이리라.
이민 1세대를 사는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문화적 갈등과 언어소통의 답답증, 그리고 힘들고 천한 일이며 참기 어려운 멸시도 견뎌낼 수 있다. 한 때는 돈푼이 벌어져 큰 집 사고 좋은 차 굴리며 즐길 것 다 즐겼어도 아이들이 잘못되면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넋 나간 황소처럼 멍해져서 통한의 속울음을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없는 한 아이가 아버지의 사냥총으로 여동생과 엄마를 죽게 했던 일이 있었을 때도 그랬었다. 최근 PC방에서 전자게임을 즐겼던 아이가 엉뚱하게 총격을 받고 아까운 생명을 잃었을 때도 "먹고사는 것 때문에 그 아이가 방황해도 조언을 못해 준 게 한"이라고 목놓아 울던 어머니를 보며 가슴이 옥죄이는 속울음을 삼켰었다.
얼마 전에는 울어야 할 때 울지 못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들려왔다. 중학교에 다니는 한 아이가 학교 앞 아버지의 노점상이 창피하다고 밤중에 가판대를 부수고 아버지에게 죽으라고 대들었다는 것이다. 출세와 물량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곳 사회풍조 때문에 철부지 아이가 생각이 못 미쳐서 그랬을까? IMF 이후 지하도에 나앉은 사람보다 그런 아버지를 진흙땅의 연꽃처럼 내세우며 고마워할 수도 있었으련만.
참담한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내 지난날을 생각했다. 이민 초기, 투 잡 청소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받았었다. 당장 한국에 나갈 수도 없는 처지라 나약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샤워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놓고 식구들 모르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 보이는 종려나무(palm tree)는 삭막한 사막의 토양이지만 잡다한 세상사 같은 가지들은 달지 않고 오직 제 뿌리를 단단히 하면서 하늘을 향해 올곧게 뻗어 오르고 있다. ‘아버지의 날’을 맞아 그 종려나무의 그 기질이야말로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온갖 고통을 견뎌 내는 아버지의 마음과 닮았다는 사실을 자식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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