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유럽을 방문했을 때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
런던 지하철역에서 여행가방이 무거워 그 자리에 놓고 노선약도를 보러 갔을 때 한 경비원이 무척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무전기에 대고 무어라 얘기를 하며 조심스레 가방에 접근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내가 가방 곁으로 돌아가자 경비원은 "다시는 가방을 방치하지 말라"고 단단히 야단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서야 영국이 북아일랜드 분쟁으로 테러가 일상화된 나라임을 기억했다.
파리 기차역에 처음 내릴 때에도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에펠탑이나 자유분방한 파리 분위기가 아니라 기관총을 메고 조를 이뤄 경찰견과 기차역을 순찰하는 군인들의 삼엄한 모습이었다. 기차역 곳곳에는 "한시라도 방치된 짐은 압수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생천 처음 기관총을 가까이 보아서인지 분위기가 지나치게 살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당시 미국이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가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 파리에서 미국의 4년 후 모습을 보았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9월 11일 오전 8시45분 민간여객기가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 트윈 타워에 정면 충돌하면서 미국은 태평천하의 꿈결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테러행위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가 오래전부터 직면해온 문제다. 그러므로 미국 공격에 대한 일방적인 보복으로서가 아니라 만성적인 세계적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다국적인 차원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시 대통령은 신속한 대응으로 미국인들의 분노를 풀어주어야 할 정치적인 압력을 받고 있지만 ‘21세기의 첫 전쟁’을 신중하게 수행할 막중한 책임도 같이 짊어지고 있다.
적도 국경도 없는 테러와의 전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분쟁, 북아일랜드 분쟁 등 이미 불안정한 중동과 세계각처의 분쟁지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특히 이번 사태를 이용하려는 분쟁국가들의 행위는 문제를 걷잡을 수 없이 확대시킬수 있다. 이미 일각에서는 회교도와 기독교 문명간의 충돌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테러는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이 발명한 것도, 독점하는 것도 아니다. 테러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이전으로 돌아간다. 미국에서도 남북전쟁이 끝난 재건기간동안 패전한 남부 주민들이 큐클럭스클랜(KKK)이라는 테러조직을 만들어 북부 지지자들과 흑인들을 대상으로 태러행위를 자행한 역사가 있다. 미국이 이번 참사를 계기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지지세력을 제거하고 아프가니스탄 등 테러비호국들을 중화시키는데 성공하더라도 테러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분쟁세력이 정당하다고 믿는 명분이 있고 두 세력간 빈부와 군사력에 격차가 있는 한 테러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번 테러에서도 단지 칼로 무장한 18명이 초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인명과 물질, 그리고 정신적으로 이와 같은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는 것만 보아도 군사력으로는 상대에 맞설 수 없는 소규모 집단에 테러행위가 투쟁수단으로 얼마나 유혹적일지 상상할 수 있다.
따라서 테러조직을 저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탄환이 오가는 전쟁이 아니라 다국적이자 장기적인 안보체체 구축일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테러참사가 발생하기 전 교토환경조약, 미사일방어체제, 국제형사법원, 생화학무기조약 등 중요한 국제이슈에서 보였던 일방적인 해외정책은 일부 분석가들에게 우려의 대상이었다. 이번 대참사를 계기로 전세계 국민들의 공감을 얻은 가운데 부시 대통령이 신중하고 안목있는 대처로 테러와의 전쟁을 이끌 수 있기 바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