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피트 7인치 최장신센터 마누트 볼, 빈털티리 신세
지난해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인 북한 이명훈의 NBA 진출 여부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런데, 1985년부터 1995년까지 NBA에는 신장 7피트7인치(2미터30센티)가 넘는 최장신 센터가 있었다. 그가 바로 NBA 사상 최장신 센터로 기록된 아프리카 수단 출신의 마누트 볼 선수다.
전성기 때 볼은 필라델피아 76ers팀에서 연봉 150만달러를 받았고, 나이키, 코닥, 도요타 같은 굴지의 기업들의 스폰서를 받으며 부를 축적했다. 그는 이 돈으로 고급 차와 호화 주택을 사는 등, 아메리칸 드림의 단맛을 만끽했다.
그러나 1995년 볼이 은퇴한지 6년 후, 지금 그는 수단의 수도 카툼의 한 전셋집에 사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자신의 NBA에서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다운타운 농구장에서 난민 어린이들의 농구게임을 지켜보는 일이다. 같은 시간, 수단 정부는 이 어린이들의 고향인 남부 반군 지역에 폭격을 가하고 있다.
은퇴 이후 볼의 인생은 미국에서의 성공과는 정반대의 궤적을 그어왔다.
투자하는 사업마다 실패로 돌아갔고, 무릎과 손목의 만성적인 관절염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 특히, 조국 수단으로 귀국한 후부터는 내전의 거센 물결 속에 돈도 직업도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의 포근한 가정을 꾸미던 아내는 일찍이 네 자녀를 데리고 뉴저지로 떠나 버렸다.
현재, 볼은 카툼 교외 낡은 전셋집에서 새로 얻은 두 아내 및 자녀 한 명, 그리고 14명의 친척들과 함께 살고 있다.
어떤 날은 무릎 통증이 너무 심해 걷지도 못하지만 치료할 엄두조차 못 낸다. 치료비를 댈 형편이 못되기 때문이다. 집안에는 이렇다할 가구 한 점도 없다. 그동안 하나 둘 다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그의 현재 꿈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NBA 연금을 받고 농구코치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에 남은 아이들을 다시 보고 싶어한다.
볼은 1985년 NBA 루키 시즌에 397개의 슛블록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은 NBA 기록으로 남아 있다. 볼의 역할은 주로 수비쪽이었다. 그러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시절 돈 넬슨 감독의 지도에 따라 그는 3점 슛에도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볼의 인생유전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수단 남부 벽지 시골에서 소 떼를 키우며 자라던 아프리카 소년이 세계 최고의 농구무대인 미국 NBA에서 성공신화를 이룩했다. 그가 어찌나 깡마르고 키가 컸던지, NBA 시절 원정경기 때면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 "경비절감을 위해 볼을 팩스로 전송해 보내자"는 농담이 오가곤 했다.
그는 한창 때 메릴랜드, 이집트, 수단의 카툼에 주택을 구입했고, 워싱턴의 한 클럽에 50만달러를 투자했다. 친구가 운영하던 이 클럽은 결국 망하고 말았다.
볼의 재산은 대부분 수단 남부 지역에 쏟아 부어졌다.
그가 소속된 딩카 부족은 식별 가능한 모든 친척들까지 가족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수단 남부 유력한 딩카 부족 출신인 볼은 친척이 수천명이나 되었고, 그 대부분은 볼의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했다.
볼은 18년째 지속되어 온 수단 내전에도 수백만달러의 돈을 쏟아 부었다.
이 내전은 대부분 아랍계 회교도들인 북부 국민정부와 기독교 및 토착종교를 가진 남부 반군 세력간에 벌어진 내전이었다. 그런데, 남부 반군을 주도한 세력이 볼이 속한 딩카 부족이었다.
이 와중에서 볼의 고향 투라렐을 포함한 수많은 지역에서 민간인들이 집을 버리고 피난했다. 볼은 이때 난민구호 활동을 펼치면서 반군인 수단 민족해방군의 핵심 재정후원자가 되었다. 볼은 반군측의 워싱턴 사무실 경비와 로비스트 경비를 전담했다. 그는 자신이 반군측에 쏟아 부은 돈만 350만달러를 넘는다고 말한다.
1995년 수단 정부가 반군에게 평화협상을 제의했고, 반군지도자 중 한 명인 리악 마차르가 정부와 손을 잡았다. 이때 민족해방군은 협상을 거부했으나, 볼은 마차르를 지지함으로써 민족해방 진영을 놀라게 했다.
1997년 그는 갑자기 우간다의 캄팔라를 떠나 수단의 카툼으로 이주한다.
이때부터 민족해방군 지도부는 볼을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이에 대해 볼은 자신은 내전에 지쳤으며 이제 평화를 모색할 시점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수단 정부는 볼의 카툼 이주를 최대한 선전전에 활용했을 뿐, 소문과는 달리 그에게 아무런 직책도 제공하지 않았다. 결국 볼은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투자한 민족해방 진영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수단 정부로부터도 내버려진 오갈 데 없는 암담한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현재 볼의 가장 큰 소원은 미국을 방문해서 자녀들을 만나고, 경제적 기반을 다시 다지는 일이다. 그러나 수단 정부가 여권을 발급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훗날 고향 투라렐에 다시 돌아와 큰 목장을 운영하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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