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현은 용감했다. 전날 역전패를 만회하겠다고 바로 그 다음날 겁도 없이 자청, 다시 마운드에 뛰어 올랐다가 월드시리즈 역사에 영원히 남을 비운의 스타가 되고 말았다. 월드시리즈 무대서 이틀연속 역전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쭈그리고 앉았던 김병현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박찬호도 용감했다. 용감하게 끝까지 버텼다가 한 이닝 똑 같은 타자(페르난도 타티스)에 만루홈런 2방을 맞는 경신 불가능의 메이저리그(ML) 신기록을 세웠다. 그리고는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정면대결을 피하지 않았다가 또 ML 레코드북에 이름을 올렸다. 본즈에 기록 경신 시즌 73호 홈런을 맞은 투수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자존심을 삼키고 피해가야 하나 사나이답게 뚫고 가야하나. 본즈와의 월드시리즈 맞대결을 앞둔 애나하임 에인절스 투수들의 딜레마가 바로 이런 것이다.
본즈는 올해 볼넷으로만 무려 198차례 1루를 밟았다. 웬만하면 다들 피해간다. 최근 텍사스 레인저스의 신임감독으로 취임한 벅키 쇼월터는 주자만루 상황에서도 고의사구를 지시했을 정도로 본즈를 두려워했다.
에인절스 투수들은 큰소리부터 치고 본다. 클로저 트로이 퍼시벌은 "본즈도 인간이다. 피할 이유가 없다"며 인상부터 쓴다. 에인절스의 1차전 선발투수 저라드 워시번도 "도망 다니는 스타일의 피칭은 싫다"며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마이크 소샤 감독도 "본즈를 고의사구로 내보내면 그 다음 타자는 12살짜리 어린애인가?"라며 이들의 의사를 받쳐주고 있다.
그러나 기록을 살펴보면 퍼시벌은 본즈와의 4차례 대결에서 3번 포볼을 내줬고, "맞아봤자 1점이면 붙어보겠지만 1루가 비었으면 칠만한 공은 하나도 안 던지겠다"는 조건을 붙인다. 워시번도 "본즈와 겨뤄보고 싶지만 우승반지가 더 끼고 싶다"며 "피해가야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용감하게 붙었다가 비참하게 깨지는 것보다 낫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바비 칵스 감독은 본즈와의 정면대결을 피하지 않았다가 3점 홈런을 맞고 탈락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니 라루스 감독도 본즈에 2타점 3루타를 맞아 사실상 승부가 갈린 NLCS 1차전을 빼앗겼다. LA 다저스의 짐 트레이시 감독도 본즈와의 정면대결을 고집하다 홈런 6방을 두들겨 맞고 침몰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인절스 구원투수 스캇 숀와이스의 어깨가 무겁다. 에인절스 불펜의 유일한 왼손투수로써 본즈를 ‘전담’ 해야하기 때문이다. 상대전적은 아주 좋다. 본즈와의 7차례 대결에서 1안타만 허용했을 뿐 홈런 없이 4삼진을 뽑아냈다. 그러나 숀와이스는 이에 대해 "본즈는 내 이름(Schoeneweis)도 발음할 줄 모를텐데 내가 본즈만 잡으면 팀의 승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매번 본즈만 잡고 들어가면 MVP로 뽑히는 것도 아닐텐데 정말 고약한 임무를 맡은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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