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사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빨리빨리’라고 한다.
우리 집 역시 예외는 아닌 듯 싶다. 하루하루가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일어나서 학교에 갈 준비를 하라며 깨우는 아내의 소리로 시작된다. 잠자리를 빠져 나왔지만 아직 잠이 덜 깨서 눈을 비비며 헤매고 있는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씻고 아침 밥 먹으라는 말이 이어진다. 밥을 먹을 때도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면서도 ‘빨리빨리’ 먹고, ‘빨리빨리’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보면서 스쿨버스를 놓치지 않게 ‘빨리빨리’ 서두르라는 아내의 재촉은 계속된다.
아침뿐만 아니다 저녁에도 마찬가지. 잠자리에 들어간 아이들에게 ‘빨리빨리’ 자고 일찍 일어나라는 아내의 ‘빨리빨리’는 그칠 줄 모른다.가끔 아내의 네일가게에 가면 그 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종업원이 ‘빨리빨리’를 흉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편이 왔으니 뒷정리는 자기들에게 맡기고 ‘빨리빨리’ 서둘러 가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한인업소에서 일하는 웬만한 외국 종업원들은 ‘빨리빨리’라는 말을 알아들음은 물론, 한인들을 보면 ‘빨리빨리’라는 농담을 건낼 정도로 ‘빨리빨리’를 즐겨 사용한다. 심지어 외국언론까지 한글 발음을 그대로 쓰고 있는 ‘빨리빨리’는 이미 세계적인 단어가 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우리는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차를 탈 때도 ‘빨리빨리’, 음식을 먹을 때도 ‘빨리빨리’ 어떤 일을 할 때든지 ‘빨리빨리’라는 말을 달고 산다. 여유를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이리저리 둘러봐도 우리 모두는 너무나 바쁘게 살고 있다. 하루에 잠깐 산책하는 것도 삶의 무게를 더한다. 하늘을 바라보며 별을 헤아리는 마음의 여유도 잊고 산다.
누군가가 ‘삶이라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남아 있는 것이다’라고 했지만 우리 대부분은 바쁘다는 핑계로 하루하루를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하지만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빨리빨리’를 외쳤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아무리 비가와도 뛰지 않았다. 양반걸음인 ‘팔자걸음’이라는 특유의 걸음으로 느릿느릿 걸었다.
우리의 고유의상인 한복은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소매주머니나 넓은 품이 있어 넉넉함과 여유를 강조했다. 김치만 보아도 숙성이라는 발효 기간을 거쳐 만들어지기 때문에 패스트푸드와 전혀 다르다. 음악 역시 서양의 음악보다 느리다. 우리의 전통 춤 또한 격렬하지 않고 ‘덩실덩실’ 흔들기만 한다. 전통 무예인 택견이나, 전통놀이인 씨름도 빠르기보다는 느릿느릿 상대와 겨루지 않는가.
현대인은 동작이 민첩한 사람을 좋아한다. 신속한 동작에는 반짝이는 생동감이 넘쳐난다. 이런 생동감에는 진솔한 호감을 갖기 마련이다.
이에 반해 느리게 산다는 것은 게으름과 동일시하고 그런 느림에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갖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하지만 우리는 ‘빨리빨리’라는 이유만으로 기본과 원칙이 충실히 지켜지지 않으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게 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피에르 쌍소는 자신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진정한 느림이란 빠름에 적응할 수 없는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리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즉 개인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2003년 새해를 맞았다.
새해가 되면 왠지 들뜨고 서두르기 마련이다. 이럴 때일수록 각자가 무엇이 빠르고 무엇이 느린 것인지를 자세히 살펴, 기본과 원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chye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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