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판도라는 여러모로 구약의 이브와 대조되는 인물이다. 둘 다 신의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야훼가 아담의 ‘동반자’로 이브를 만든 것과는 대조적으로 제우스는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를 벌주기 위해 판도라(‘all gift’라는 뜻)를 만들어 그에게 보냈다.
‘현명한’ 프로메테우스(‘forethought’라는 뜻)가 선물 받기를 거부하자 판도라는 그보다 좀 둔한 그의 형 에피메테우스(‘afterthought’라는 뜻)의 차지가 됐다. 판도라가 시집올 때 들고 온 ‘판도라의 상자’(사실은 항아리)를 신의 명을 어기고 여는 바람에 세상에 온갖 재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부분은 이브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있다. 그래서 그리스와 유대 문명 모두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편견을 담고 있다는 여권론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인간이 모든 고난을 견디며 인생살이를 할 수 있는 것은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 덕분이라는 게 이 이야기의 메시지다. 동물은 밥만 먹고살지만 인간은 희망을 함께 먹고산다. 해마다 정초가 되면 “희망찬 새해를 맞아...” 운운하는 연하장이나 덕담을 주고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월을 남다른 희망을 갖고 맞는 사람들이 있다. 주식 투자가들이다. 1월은 투자가들에게 가장 반가운 달의 하나다. 역사적으로 주식은 4~10월보다는 11~3월 사이에 훨씬 많이 오른다. 그 중에서도 1월 달은 상승률이 높다. 증권가에서는 이를 ‘1월 효과’라고 부른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느냐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12월 떨어진 주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세금 공제라도 받기 위해 처분한 후 투자 포트폴리오를 재정돈하기 때문이라는 설, ‘희망의 동물’ 인간의 새해에 대해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는 설 등이 있을 뿐이나 어쨌든 다른 달에 비해 수익률이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1월은 주식 투자가에게 또 다른 이유로 중요한 달이다. 지난 50년 동안 1월에 주식이 오른 해는 대체로 주식이 오르고 내린 해는 대체로 내렸다. 이 패턴에서 벗어난 해는 단 열 번뿐이다. 80%의 명중률을 자랑하는 셈 이다.
주가 예측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은 ‘1월’만은 아니다. 수퍼보울도 최근까지 이에 맞먹는 정확도를 보여왔다. 1967년에서 1997년 사이 거의 틀림없이 AFL 팀이 이기면 주가가 내리고 NFL팀이 이기면 올랐다. 30년 동안 27번을 맞췄다. 그러나 지난 4년 간 내리 틀리는 바람에 명성에 손상이 좀 갔다.
치마 길이로 주가를 전망하는 것은 고전적인 수법. 치마 길이가 짧아지면 호황, 길어지면 불황이 온다는 설인데 얼핏 보기만큼 허황된 주장은 아니다. 경기가 좋으면 씀씀이나 옷차림이 헤퍼지며 나쁘면 옷차림부터 보수적이 된다는 것이다.
시사 주간지 커버로 금년의 주가 동향을 점치는 사람도 있다. 타임이나 뉴스위크 커버에 호황을 상징하는 황소가 나오면 금년 주식은 종쳤고 불황을 상징하는 곰이 나오면 지금이 살 때라는 것이다. 대중잡지 커버는 일반인들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기 때문에 이들이 호황 분위기에 들 떠 있을 때는 이미 주가가 막차를 탄 상태라는 얘기다.
1월초 산양처럼 깡충깡충 오르며 투자가들의 기대에 불을 지피던 미 증시가 중반 들어 죽을 쑤다 폭락세로 1월장을 마감했다. 불길한 조짐이다. 올해에도 주가가 내려가면 4년 연속 하락이라는 치욕스런 기록을 남기게 된다. 미 주가가 4년을 내리 떨어진 것은 1929년 대공황이래 유례가 없는 일이다. 아직도 많은 분석가들은 “70년 만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이 설마 일어나겠느냐”며 조심스런 낙관론을 펴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2000년은 물론이고 2001년과 2002년에도 낙관론을 폈다는 점이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음을 실감케 된다. 대다수 증권 전문가와 ‘1월’ 중 어느 쪽이 과연 정확히 앞날을 맞출지 지켜볼 일이다.
민 경 훈 <편집위원>
kyum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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