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무더운 어느 여름날, 값싼 노동력을 실어 나르는 화물선 짐칸에서 방금 내린 피곤한 표정의 20대 초반의 이탈리아 이민자가 휴스턴 이민국 직원 앞에서 면담을 하고있었다. “What is your name?” 이라고 묻자 이태리말로 영어를 못하니 통역을 붙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콧대높은 이민국직원들은 이 남자를 가운데 놓고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이름도 모르는 바보같은 놈이라며 멸시하고 구박을 해댔다. 그 남자는 그 당시 이민국 담당직원이었던 Miller라는 사람이 이민국 서류에 장난으로 자기의 이름 (first name)을 써서 집어던진 까닭에 팔자에도 없는 Miller라는 성을 갖게 되었다.
이 남자가 제일 처음에 일하게된 이태리 식당의 주인이 ‘Papasito’라는 이름을 지어주어서 ‘Papasito Miller’라는 이태리식 이름과 미국식 이름이 성이 되어버린 국적 없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후 수년간을 Mr. Miller는
이 식당, 저 식당을 전전하며 막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우리 한인들도 미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영어 때문에 멸시 당하고 창피한 일을 겪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영어는 물론,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밀러가 겪었던 설움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게 지나간 핍박과 시련의 세월이 반세기.
50년 후 Miller는 휴스턴에서 가장 커다란 레스토랑체인점의 사장이 되기에 이른다. 그는 70 평생동안 연극 구경을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젊었을 때는 여유가 없었고 좀 나이 들어서는 영어발음이 나빠서 문전에서 쫓겨나기 일쑤였으며 늘그막에 무식하다고 구박받으며 지낸 시절이 너무 창피해서였다. 그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신분과 학식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이 즐기며 살 수 있는 사회, 어느 누구도 문전에서 박대 당하지 않는 사회, 모든 사람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였다.
그가 말년에 연극구경을 가려 했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땐 이미 중풍으로 거동이 불가능해져 그 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밀러 재단을 만들어 그가 모은 모든 재산을 휴스턴의 문화발전을 위해 기부한 후에 숨을 거둔다. 문화생활이라고는 단 일분도 즐기지 못했던 그의 유언은 딱 한가지였다.
휴스턴 중심부에 위치한 금싸라기 땅에 커다란 야외 극장을 만들고 거기에는 어느 누구도 입장을 거부당하지 않는 것이다. 술주정뱅이도 좋고, 절도범도 좋고, 교수나 막일꾼이나 누구에게나 똑같은 입장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밀러 극장(Miller Theater)에는 입장료가 없다. 하지만 입장료가 없다고 엉터리 싸구려 연극을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셰익스피어 축제가 열리는 것을 비롯해서 밀러 극장은 휴스턴의 문화의 산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스턴에 있는 밀러 극장 앞에 있는 커다란 호수는 저녁때만 되면 예술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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