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의 발언이 우리를 어이없게 만들 때가 있다.
“일본의 한국 식민지정책은 한국 개화에 도움을 주었다” “태평양전쟁이 동남아 제국의 독립을 가져왔다” “한국인의 창씨 개명은 한국인이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등등. 그들이 아직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은 딱한 일 이다.
지난 2일자 일본 아사히신문 ‘나의 시점’에 한국인의 투고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그 제목은 ‘창씨 개명·직원실에서 울던 마음 아픈 기억’이었고 투고자는 전 대학 교수 P씨였다.
한국이 일본 식민지 시절 성장한 그의 숨죽인 생활과 모교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겪었던 창씨 개명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 교사 25명, 한국인 교사 5명의 직원실, 교장이 벌이던 매일 아침의 독촉, 분위기가 주는 중압을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창씨 개명을 한 후 겪는 착잡한 심경이 솔직하고 깔끔한 글에 실려있다.
이 글은 얼마 전에 있었던 일본 정치가의 ‘창씨 개명은 한국인 측에서 원한 것’이라는 발언에 대한 반박이었다. P전 교수는 ‘한국에서는 나쁜 일을 한 사람을 가리켜 성을 바꿔야 할 사람’이라고 하는 국민적인 정서가 있음을 언급하였다.
이어서 그는 “지난 달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역사 문제를 접어두고 미래 지향적인 국교를 맺기로 하였다. 그러나 앞에 예거한 망언을 하는 세대가 남아있다면 어떻게 앞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라고 개탄 한다.
창씨 개명의 기한을 정해놓고 죄어오는 강요는 사회 전체에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직장인이나 학생 신분의 젊은이들의 할 수 없다는 체념과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연장자들과의 갈등, 반항할 힘도 없이 방향을 잃고 있는 사람들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어떻게 성과 이름을 바꿔야 하겠는가 하고.
일본인들이 불쑥 망언을 할 때마다 한국 내외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한민족의 반응이 발언자들에게 전해지는지 의문이다. 잘 전해진다면 이런 종류의 말이 계속하여 나올 수 있겠는가. 하여튼 일본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우수한 민족으로 알고 있으며 특히 한국인에 대한 우월감은 씻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이 일본 문화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황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우월감이 하늘을 찌르더라도 현실 상황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우수성을 인정하더라도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도 찾아봐야 한다.
그들 개개인은 별로 우수한 것 같지 않지만 여럿이 모였을 때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눈여겨보아야 한다. 우리는 좀 더 일본을 알려고 노력하면서 그들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일본은 우리의 이웃 나라이고 협조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나라이다.
때로는 침묵이 아름답다. 그러나 침묵하고 있으면 시인하거나 만족한 상태로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가 역사를 왜곡하여도 침묵을 지킨다면 그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 그런 뜻에서 아사히신문에 난 투고는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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