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nks for the Memory’라는 노래가 있다. 얼마 전 100세의 나이로 타계한 전설적인 코미디언 밥 호프가 불러서 유명해졌던 그의 대표적인 노래이다. 영국 태생으로 네 살에 미국으로 와서 17세에 미국시민이 되어 대통령이 18번이나 바뀌도록 1세기를 살다 간 밥 호프.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코미디언으로서, 배우로서, 가수로서, 명 사회자로서, 골프를 지극히 사랑하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장수한 부호로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밥 호프는 무엇보다도 그가 평생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펼쳤던 미군 위문공연으로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2차 대전에서부터 한국전, 베트남전, 그리고 80세를 훨씬 넘긴 나이에 걸프전에 이르기까지 그는 전쟁이라는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던 사람들에게 위로와 웃음과 그리고 그의 이름대로 희망(hope)을 안겨다 주었다.
그의 이러한 공로를 기려 연방의회는 1997년 그를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명예 퇴역미군으로 표창했고 영국 정부는 1998년 그에게 기사작위를 주었다. 그의 죽음에 부시 대통령은 한 위대한 미국시민을 잃었다고 애도하면서 전국 관공서에 조기를 걸도록 했고, 매스컴들은 다투어 그를 추모하는 특집을 다루었다. 한 연예인의 죽음이 온 미국을 술렁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한 가지 생각되는 것은 미국사회는 연예인이건 스포츠 스타이건 혹은 정치인이건 간에 어느 분야에서나 오래 동안 축적된 값진 경험과 전통을 기리고 추구한다는 것이다. 밥 호프의 경우만 해도 구시대도 한참 구시대의 인물이고 따라서 그에 관한 일들이 모두 구시대의 일들이었으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로서는 무관심하거나 소홀하기 쉬운데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견주어 보게 된다. 지금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들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참여정부가 들어서서 하나의 새로운 ‘정치세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옛 것은 모조리 ‘수구’라는 낙인을 찍어 분별 없이 배척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정치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 등등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까지는 좋겠지만 그러는 중에 과거의 경험과 연륜을 헌 신짝처럼 내던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동안 경로효친을 덕목으로 삼아온 한국사회였는데 갑자기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을 하면 도둑)라는 농담까지 나돌고 있으니, 그렇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모든 분야에 풋내기들만 있는 셈이다. 풋내기들은 그들보다 먼저 풋내기를 지낸 노장들이 있고 또 그들도 경험과 연륜을 쌓으면 노장이 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옛 것이 오랜 세월을 두고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은, 상황과 여건이 바뀔 때 일을 처리하는 도구와 방법론은 바뀌더라도 예전부터 추구해 오던 목적과 이상 그 자체는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과 연륜과 전통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하루아침에 내버려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영어에 ‘oldies but goodies’(낡았지만 좋은 것들)라는 표현도 있다.
지금 한국사회가 다소 위험스럽게 보이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반면에 미국사회가 견실해 보이는 것은 경험과 연륜과 전통을 존중하고 기리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밥 호프에 대한 추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그가 불렀던 ‘Thanks for the Memory’를 이제 오히려 사람들이 오래도록 부르면서 그를 고마워할 것이다. 한국인들의 사회에서도 안팎에서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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