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나가 서울 근교의 다산 정약용 선생 기념관에 갔다. 한국적인 정취를 사진에 담고 싶어 카메라로 구도를 잡으려 하면 어김없이 ‘산채 정식 0000원’ ‘오리 황토구이 전문’ 등 제멋대로인 대형 간판을 앞세운 음식점들과 여기 저기 아무렇게나 주차한 자동차들이 그 풍경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무참하게 깨뜨리며 끼어 들어와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지방에 내려간 적이 있다. 비행기 창으로 내려다 본 한국의 모습은 한 마디로 아파트의 숲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 우리나라의 산수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이 수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처럼 무계획적으로 개발을 한 나라가 지구상에 또 어디 있을까. 나는 10년 전에 경주를 가 봤었다. 이 번에는 도저히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역사가 살아 숨쉬는 왕릉과 고분들,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유산과 유적들 사이사이로 뒤죽박죽 솟아 있을 아파트 빌딩들, 음식점과 숙박시설들을 상상만 해도 속이 매스꺼울 지경이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아파트와 온갖 흉한 건물들을 다 부숴 버리고 처음으로 돌아가 철저히 계획하여 새로 도시들을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아파트 단지 안이나 인근 지역에 상가와 병원, 학교가 함께 있는 편리함에 너무 깊이 길들여져 있다.
그러나 정책적으로 또 사회운동을 벌여서 가구당 자동차 대수를 줄이도록 하고, 간판에 대한 새 규정과 법을 만들어서 추한 간판들을 갈아치우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또 문화유적지나 자연경관이 수려한 곳에서는 현재 있는 건물과 시설물들이 오래되어 재건축을 요할 때가 되면 부수어 버리고 다른 곳에 짓도록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실행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대대손손 물려줄 우리 국토요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꼭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일에 국민 통합이 필요하고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인들도 이제 해외에 나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드물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이처럼 자연을 훼손시키고 수 천년 역사가 깃든 유적지들을 망쳐놓은 곳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은 ‘문화유산의 나라’로 유네스코에 등록될 만큼 역사적 문화환경도 잘 가꾸어 온 나라이다. 그들도 개발시대에 인간의 탐욕과 단견 앞에서 자연과 문화환경이 파괴되는 일을 겪었다.
우리와의 차이는 주민들이 들고일어나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하여 ‘고도 보존법’이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그 법이 제정된 후 40년 가까이 거의 완벽하게 이행되어 왔다는 점이다. 우리라고 왜 못할까? 경주와 부여와 서울의 시민들은, 또 많은 시민단체들은 자연적이고 역사 문화적인 환경보존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재숙
애팔래치안대
정보기술시스템 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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