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를 견디지 못 해 자살하는 사건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국 굴지의 재벌회장이 투신 자살을 하였다. 당사자가 대북 송금사건과 관련하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터라, 여느 자살사건보다 그 파장이 더 크다. 생활을 비관해 목숨을 끊은 서민들의 자살을 사회적 불평등이 낳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듯이, 정회장의 죽음을 놓고도 정치적 타살이라는 다양한 견해들이 서로 시비하며 각 언론사의 인터넷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공자는 자공이 “오늘날 정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자, “한말 두되 들이 정도의 좁은 소견머리를 가진 사람들이라 어찌 계산에 넣을 것이나 있겠느냐?”고 했다. 공자 당시의 정치인들이나 오늘날 한국 정치인들의 모습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던 공자는 정치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남겼다.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든든히 하며, 백성들이 신뢰하게 하는 것이다”고 했다. 자공이 다시, “꼭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이 셋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하고 묻자, 공자는 “군사를 버려라”라고 했고, 그 다음 또 버려야 한다면, “식량을 버려라”고 했다. 공자는 이어서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음이 있거니와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고 하였다.
식량이 부족한 것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죽음이 생기고, 군사적으로 약해도 죽임을 당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렵고 군사적으로 약한 경우는 어떻게든 구차하게라도 모진 목숨을 부지할 여지는 있고, 또 침략을 당해 죽는 경우에는 맞서 싸우다가 죽는 명분이라도 있다. 그러나 신뢰를 잃은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며, 죽더라도 그 죽음은 별 명분이 없어 허망하기 그지없다.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도를 밝힌 사람이 먼저 하늘의 뜻을 밝히고, 이어서 도덕, 인의, 분수, 실제와 명분의 일치, 재능에 따른 임명, 감찰, 시비, 상벌을 차례대로 밝히니,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에서 실정대로 처해 재능대로 나누어지고 그 명분에 따르게 된다. 옛사람은 다섯 번째에야 실제와 명분의 일치를 들었고, 아홉번째에야 상벌을 말했다. 갑자기 실제와 명분의 일치, 상벌을 말하는 것은 그 근본과 시초를 모르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의 기술은 안다고 하겠지만 정치의 원리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정 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쩌면 남북분단이라는 상황이 오늘의 사태를 낳은 근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리 멀리 갈 것이 없다. 문제는 지금의 정치현실이다. 도덕, 인의, 분수의 정치 원리를 알지 못하고 얄팍한 지모와 정치 기술밖에 가지지 못한 소인배들이 판치는 정치가 서민들에서부터 재벌회장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100여년 전 나라가 망할 때도 위정자들은 유교 정치이념을 고수했으면서도 공자가 말한 식량, 군사, 백성으로부터 신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쓸데없는 시비로 시간을 보내다 나라를 또 망치지 말고 정치의 원리가 무엇인지 알고,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치가 아니라, 신뢰를 얻는 정치,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할 것이다.
김재범/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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