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에밀 뒤르껭은 사회학과 인류학의 선구자다. 그가 이 학문 분야의 선구자로서 우뚝 자리 매김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897년 자신의 저서 ‘자살론’이 발표되고 나서부터다.
그는 이 책에서 자살은 엄연한 사회현상이며 그 원인 역시도 분명한 사회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당시 철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기존의 학문들이 자살은 마치 정신병이나 신경쇠약증과 같은 신체적 물질적 조건들로 야기되는 죽음의 현상이라는 생각들이 지배적이던 정황을 감안한다면 과연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의 전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자살론’에서 자살의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하였다. 첫째, ‘이기적’ 원인이다.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유대감이 완화되고 개인주의가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환경에서 자주 발생하는 자살 유형이라고 한다.
둘째, ‘이타적’ 원인이다. 이는 자신이 소속한 특정 사회집단이나 공동체에 강하게 밀착되어 있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자살 유형이라고 한다. 우리는 때로 이렇게 죽는 사람들을 가리켜 ‘애국지사’ 또는 ‘순교자’ 라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아노미적’ 원인이 있다. 아노미란 사회 규범이 부재한 상태를 말한다.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통한 아노미 현상이 가중될 때 이런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자살했다. 그의 갑작스런 투신자살 소식은 우리를 지금 무척 슬프고도 혼란스럽게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발생하는 자살문제가 ‘자살 신드롬‘이라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야기되고 있는 마당에, 그의 자살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참으로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자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 원인에 대해서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고 있다. 혹자는 개인적인 심리현상에서 자살의 원인을 찾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시국이 그를 죽음의 길로 인도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또 앵커맨으로 한 시절을 주름잡다가 정치판에서 입이 몹시도 걸어진 어떤 한 언론인은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 대신에 죽었다”고 단언했다. 그런가 하면 한국 정가 역시도 여지없이 피 튀기는 “네 탓이요” 설전이 난무하고 있다.
정몽헌 회장, 왜 죽었을까?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아니면 아노미적일까? 우리는 좀더 그의 죽음을 객관적으로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스스로가 “딱 이거다”라고 밝히지는 않았다손 치더라도, 그가 남긴 유서 속에는 분명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나의 유분을 금강산에 뿌려 달라…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란다.”
정 회장의 갑작스런 자살을 굳이 뒤르껭의 분류에 적용하자면 그것은 정녕 ‘이타적’ 유형이 분명하다. 그는 자신의 조국, 대한민국을 대단히 사랑했다. 물론 자신의 기업, 현대도 여지없이 사랑했다. 그러나 두 동강 난 자신의 조국만큼은 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더 많이 사랑했던 것 같다.
통일 염원에 대한 선친의 유지를 받들고 민족통일을 향하여 몸부림치던 그의 노력을 결국 ‘냉전과 수구의 올가미들’이 중단시키고 끝내 그를 죽음으로 이끌고 말았다는 주장 앞에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아직도 “특검 탓이다, 정책 탓이다”라고 쟁변을 일삼는 자들에게 “내 유분을 금강산에…”라는 조국 사랑의 애착과 항변을 담은 그의 애국지심 순교자적 ‘이타적 죽음’은 그것이 과연 ‘개인적’ 자살일까 ‘사회적’ 타살일까?”
조일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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