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권노갑씨가 그의 생애 여섯 번째 감옥행을 했다는 소식이 울적한 우리들 가슴을 더 가라앉게 하고 있었다. 요즘처럼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어처럼 줄줄이 꿰어 동반 추락하는 정, 관, 재계의 얽히고 설킨 악연을 지켜보며, 제대로 맺고 끊음이 불분명한 우리사회의 습성에 가슴 답답해지며 바다 건너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있었던 묵은 이야기가 새삼 떠오른다.
“나이 60에 여성과 헤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비로소 알게 됐다.”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자신을 ‘개혁 저항세력’이라고 힐난한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 놓았다. 1942년 1월 생인 고이즈미 총리는 지난해 초 이순을 막 넘긴 이혼경력의 독신남. 두 살 아래인 다나카는 자민당 총재 선거 때 “정치적 부인으로서 고이즈미를 지지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선언했을 정도로 서로 밀착된 사이였다. 그런 그녀에게 등을 돌려 매정하게 정을 떼고 결별을 선언했으니 다나카의 서운함이 오죽했겠는가! 그녀의 돌출 발언을 이해함직도 하다. 이제 그들 둘은 정치적으로 갈라섰고, 그러니 고이즈미 총리는 부인과의 이혼에 더해 ‘정치적 이혼’까지 경험하게 된 셈이다.
고이즈미 총리와 다나카 외상의 밀월은 10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깨어졌다. 둘은 학문적 배경이나 사회적 정치적 경륜, 나이로도 인생의 원숙한 경지에 이른 사람들인데도 헤어짐만은 깔끔하게 마무리짓지 못한 모양. 그 면에서는 총리라도 예사 시정의 범부와 비교 크게 다를 바가 없는 모양이다.
남녀간의 관계에선 연륜도 경륜도 때로는 맥을 못 춘다. 다짐하고 ‘미리 공부’해 둔대도 소용없는 일. 남녀간의 관계란, 그것이 육체적으로 엉킨 끈적한 인연이던, 정신적인 결합이건 법적인 테두리나 서류상의 타협선을 넘어서는 보다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이다. 이건 예사 비즈니스 협상과는 다르다.
필부나 여염집 아낙의 신분일지라도 헤어짐은 그리 녹록하고 단순하지만은 않다. 사랑의 농도에 따라 결별의 아픔도 크고 부작용도 따를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이다. 체념은 빠를수록 좋다. 그저 헤어짐이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다소곳하게 받아 들여라.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훨씬 아름답고 가치 있다. 어줍잖은 변명이나 수사는 도리어 금물. 유행가 가락에도 있듯이 인생은 어차피 나그네길이요, 그 길에서 만남과 헤어짐은 다반사인 것을!
인생 길에 만남이 요행이라면 헤어짐은 운명이요 시련이다. 순한 헤어짐은 좋은 만남 못지 않게 소중한 것이다. ‘떠날 때는 말없이’란 유행가 가락은 떠나는 사람이 아닌, 보내는 사람이 부르는 이별곡이다. 읍참마속의 결단은 범인들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릇의 크기가 달라야 가능할 일이다. 가신정치의 그 끈적하고 암울했던 한 시대가 이제 무대 뒤로 소리 없이 빨려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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