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마당의 호박과 토마토를 이제 그만 뽑던지 정리 좀 해야겠어요” 라고 남편에게 소리친다. 가을이 다가오자 마당 한구석에 심었던 호박들이 잎이 허옇고 누렇게 변해 가장 지저분하게 느껴져 뽑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호박에게 미안했다.
나는 올 봄 여러 종류의 야채를 심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심었다며 제일 예쁘다고 칭찬하며 아침저녁 필요할 때마다 따서 전이며 나물이며 찌게까지 끓여 먹었고 아울러 이웃까지도 나누어주며 생색을 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가장 지저분하다며 정리 1호로 삼는 내게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의 간사함이 느껴졌다.
우리의 인생이 짧다고는 하지만 결코 짧지 않은 긴 여정이다. 이 여행길에 호화로운 유람선을 타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도 있으나 때로는 사막이나 늪 속에서 한 모금의 물이 아쉬워 목말라 할 때도 있고 밧줄이 필요할 때도 있다. 또 바다 한가운데서 구조선이 필요할 때가 있으나 다른 사람의 고통이 내 고통이 아니라고 가볍게 지나쳐버리거나 더 나아가 거침없는 비난이나 조롱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는 “동냥은 못줄 망정 쪽박이나 깨지 말라”는 옛말이 맞음을 실감케 한다.
또 도움을 받았던 경우도 겉으로 나타나기에는 똑같은 물이요 밧줄이요 배라도 효용가치가 다르건만 자기 편의에 의하여 똑같은 것이라고 일축해 버리기 일쑤이다.
평탄한 길에서의 이웃이 되어주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이것은 비교적 쉽게 되어줄 수 있는 일이나 험한 길에서의 이웃은 쉽게 되어주기 힘이 든다. 그러나 내가 조금 불편하고 부족하더라도 험한 길에서의 이웃이 되어줌은 앞으로 나의 긴 인생 길에 그늘과 쉼터를 마련함과도 같은 것이다.
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한 씨앗을 뿌림과 같음을 ‘똑똑하고 영악한’ 사람들은 잘 모르며 살고 있다. 나 역시 삶 속에서 너무 눈앞의 달고 큰 열매에만 연연하며 길고 긴 인생 길에서 쉬어갈 수 있는 그늘과 쉼터를 마련함에 게을리 하지 않았나 자책한다.
똑똑함과 영악함보다는 바보 같지만 지혜로운 삶을 살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열매를 맺고 있는 호박들의 잎을 정성스럽게 다듬어 준다.
박용하/웨스트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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