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6월25일 새벽4시 북한 인민군은 적화통일의 야욕으로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육, 해, 공 군의 입체적인 총공격을 개시했다. 한국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놓였을 때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 21개국의 지원으로 구사일생, 9월15일 맥아더 장군의 전투 지휘하에 인천 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9월26일 빼앗겼던 수도 서울을 재탈환했다.
용감한 국군 해병대와 미해병 1사단 그리고 국군 1사단의 작전 성공으로 정부가 수도 서울을 수복해 중앙청 국기 게양대에 해병대 박정웅 소위의 지휘하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역사적인 감격의 순간이기도 하였다. 한국 정부가 오죽이나 무능하였으면 3일만에 서울을 인민군에 강점 당하였을까? 7월20일 북한군은 대전을 점령하고 파죽지세로 대구까지 총공격을 가해왔다.
8월3일의 다부동 전투의 중요한 전선은 마지막의 최후의 낙동강선 방어의 보루였다. 당시 나는 1사단 11연대 11중대장 시절이었다. 필사적으로 북한 인민군 제 2군단 제 3사단, 13사단, 15사단의 총 공세를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8월11일 유엔군은 진주를 탈환했고 유엔군의 인천 상륙작전 전개 시에는 해외 재일 한국 청년 학도 의용군이 미 제 1 기병사단에 자진 편입해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그런 9월15일을 상기해본다. 그러나 1950년도 그 당시의 해외 재일 청년들의 애국심을 볼 때 과연 오늘 LA의 학생이나 재일 학생 청년들이 의용군으로 자원 입대하여 모국의 운명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조국에 바칠 것인가? 53년 전의 인천 상륙 작전과 서울 수복을 생각해보면서 고국을 떠나있는 우리들의 각오도 서야한다.
우리는 미국을 위시한 유엔군 21개국 우방의 은혜를 기억하고 배은망덕하지 않는 한인이 되어야한다.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이 있었겠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반미 감정은 절대로 안 된다. 53년 전의 9.28을 상기하며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북한의 위협에 맞서 대비하여야 한다.
한미 우호동맹 50주년, 휴전 50주년, 서울 수복 50주년에 즈음하여 한미간 우의를 더욱 돈독히 해야한다. 북한은 핵 개발 및 대량 살상무기 등 동족 말살의 흉계를 버리고 전쟁 없는 평화적 통일 방법을 찾아야 하며 민족 멸망의 무기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
북한은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학살 등의 만행을 중단하고 그들의 생명도 소중함을 인식해야 한다.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를 인도적 차원에서 조속히 송환해야 한다. 북한주민 35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30만 명 이상의 탈북자가 중국, 몽골 등지에서 배회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쁨조 등을 운영하며 개인의 호화 향락을 누리고 있는데 인민은 굶어 죽고 있다.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의 기쁨조를 파견하는 등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는 끝내야 하며, 북한은 개방되고 개혁되어야 한다.
김정일이 죽기 전에는 평화 통일은 없으며 하루라도 빨리 북한의 인권도 소중히 여기고 김정일 독재 정권을 축출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하여 남북 통일의 선구자적 역할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김봉건/재향군인회 미서부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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