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개 죽을병에 걸리거나 죽을 나이에 이르러서야 죽음을 의식하고 죽을 준비를 하지만 요즘처럼 위험한 문명사회에서는 죽음과 삶은 동전의 앞뒤 같다. 현명한 사람들은 돌발성 죽음을 대비하여 생명보험, 유언장 그리고 장지를 준비해 둔다. 그러나 나는 죽음을 의식할 나이에 이르러서야 우리 내외가 묻힐 묘 자리를 두 아들과 의논하게 되었다.
로즈힐스는 공원 입구에서 정면으로 쳐다보니 정상을 중심으로 양쪽 능선이 마치 콘도르가 두 날개를 펼치고 안을 감싸고 있는 듯한 형국이었고 좌우 산비탈로 수십만을 헤아릴 만큼 촘촘한 유택 단지는 과연 세계 제일의 크기라고 할만했다.
한국인 카운슬러의 안내를 받고 납골당 돌무덤 화장터와 관을 짜고 비석을 깎는 장인들의 일터를 돌아보니 여느 관광보다도 의미가 있었다.
산으로 올라가면서 유심히 보니 산비탈을 따라 특별히 조성되어 있는 엄청난 고가의 개인 묘와 가족묘는 거의가 중국인 한국인 또는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명당에 묻혀 자손들에게 복을 바라는 동양적 운명관이 서양의 기독교적 운명론과 비교되기도 했다.
동양인 고객이 늘어남에 따라 산 뒤 동쪽에 새로 묘역을 개발하고 있었고 동양인의 취향에 맞게 풍수지리설을 응용하여 원형을 이룬 산 능선 비탈의 기슭들이 한군데 모여 골짜기를 이룬 곳에다가 호수를 만들어 주위에 나무를 심어 풍경 있는 공원 묘지를 조성하는 5년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우리는 호수 가까이 지금 작업중인 곳에 두 아들의 가족을 포함한 가족묘지를 구입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러고 나니 숙제를 푼 듯이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유택 단지가 이웃처럼 느껴진다.
돌아오는 길에는 산꼭대기에 올라 서본다. 머리 위로는 햇살이 가득하고 바람과 공기가 너무 좋아 긴 호흡을 해본다. 도시는 온통 스모그에 싸여 있고 세상이 조잡하게 보인다. 저 공기를 마시는 인간들의 애증과 욕망의 갈등이 생자필멸의 숙명 앞에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가를 느끼게 한다.
문득 아내가 우리가 서있는 바로 아래에 조성중인 묘역을 보다가 여기가 너무 좋구나 하고 독백처럼 뇌었다. 그러자 바로 곁에 서있던 둘째가 얼른 받아 엄마하고 아버지는 여기에 해. 우리는 아까 거기하고한다. 큰아이도 엄마, 그렇게 해. 여기가 참 좋다고 거든다. 아내가 나를 쳐다보기에 당신 좋으면 그렇게 하자.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여기인데하고 동의한다. 그래 묘 터 값이 좀 비싸도 우리 내외는 능히 그만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 날 밤 아내는 마음이 좀 들떠 있었다. 죽어서도 자식들과 가까이 산다는 것이 기쁘고 그 위에 평생 처음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아무 군소리 없이 쉽게 가져서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남진식/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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