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눈처럼 쌓여진 거리를 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라고 시작하는 ‘가을비 우산 속’이라는 낭만적이고 가을 정서가 가득한 흘러간 가요가 있다. 비록 시간적으로는 때 지난 가요일지라도 계절적 노래라 그런지 가을이 되면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에겐 여전히 사랑을 받는다.
최근 한국에서는 현실 세계에서 ‘가을비 우산 속’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낭만적이지도 추억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 것은 고사하고 국민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어 안쓰럽다.
이미 잘 알려진 일이지만 다시 한번 언급해 보면 이 사건은 국군의 날 행사 현장에서 있었다. 거리 행진이 있기 전 대통령은 도열한 국군장병들을 사열했다. 그런데 그 날 비가 내렸다. 문제가 된 것은 전 국민이 바라보는 그 순간 대통령은 연장자인 국방장관이 받쳐주는 우산 속에서 사열을 한 것이었다. 그 날 대통령의 사열 시간은 불과 15분이었으며 폭우도 아닌 그저 가을비였다. 그리고 수많은 국군 장병들은 빗속 도열을 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한 행사에 국군의 통수권자는 차라리 비를 맞으며 사열을 해야지 나이 든 국방장관이 받쳐주는 우산을 받았어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으며 그 모양새는 참으로 기가 차다.
이러한 일은 탈 권위를 내건 정권의 개혁세력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비난하는 군사독재에서도 왕조시대에도 가능하지 않았다. 젊은 왕이 노 병조판서가 받쳐주는 우산을 당연한 듯 받았겠는가? 우리 모두가 생각해 볼 부분이다. 무엇이 탈 권위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를 보면서 오래 전 본 한 미국영화가 떠올랐다. 영화의 내용은 한 농부의 이야기였다. 농부는 농부들의 권익을 위해 일했다. 정부와 싸우는데 앞장섰다. 어느덧 이 농부는 농부들의 지도자로 떠올랐으며 그의 지도력은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는 성공을 거둔다. 농부들은 무언가 참신함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그러나 정계로 진출한 이 농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비난하고 공격하던 바로 그 정치인들처럼 변신해 가고 있었다. 아니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다. 더 이상 서민도 아니었으며 농부는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그는 농민들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며 그의 인생도 실패한 결말을 맺는다.
초가을 서울서 들려온 소식은 이 가을 내내 가을비 우산 속 낭만의 기대를 일치감치 날려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게 하며 한 농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백향민 영어음성학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