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했듯이 정치인에게는 정치권력이 고기 맛 이상이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투표로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고 한다. 어떻게 잡은 권력인데 죽 써서 개준다라는 격으로 반대표가 한 표라도 많으면 쉽게 포기하겠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국민투표의 핵심이 부정부패에 대한 심판이라면 법에 의해 판결을 받아야지 왜 인민재판식으로 국민투표에 부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치의 본래 목적은 인간이 인간답게 생활하도록 환경을 정비하고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수천년의 역사를 통해서 민중은 언제나 권력의 희생자가 되었다. 비단 난폭한 권력행사에 의해 재산을 박탈당하고 생명까지 빼앗겼다는 의미에서만 희생자였던 것은 아니다. 권력 장악자의 ‘조작’에 의해서 개성을 말살 당하고 권력을 찬미하며 자진해서 자기를 희생하도록 길들여져 왔다는 의미에서도 희생자였다는 것이다.
정치학자 H.D. 라스웰 교수는 정권 장악이 정당하지 않고 그 합법성이 명확하지 않을 경우 집권 내내 정치불안과 사회혼란을 가져온다고 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돈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면 그 비합법성과 비정당성으로 인해 분쟁은 계속될 것이다.
정권을 합리화하려고 ‘조작’이라는 악수를 쓰면 쓸수록 더 독한 극약을 쓰게 되어 종국에는 국가존망의 위기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인 정치세력이 이 조작에 조작을 가해 국민을 혼란케 하고 정권을 무너뜨려 찬탈하려는 쿠데타적 언동에도 경계해야 한다.
혹자는 이번 난국 타개에 선택될 가능성이 짙은 국민투표라는 방법을 두고 정면돌파라는 군사적 용어를 쓰고 있는데, 전술적으로 정면돌파하자면 전쟁의 9대 원칙 중 집중의 원칙에 따라 결정적인 시간과 장소에 전투력을 투입해야 한다. 논리적 비약이 될지 모르지만 엄청난 국력 낭비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국민투표의 결과가 불신임이 된다해도 국가안위와 국력 절약을 고려하여 대통령이 하야하지 말고 내각책임제 형식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현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정치인이 없으며, 돌 던질 자 나오라고 할 경우 양심이 있으면 아무도 나오지 못할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바꿔 봤자 그 사람이 그 사람일뿐 기대와 희망이 없다.
제임스 브라이스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라는 저서에서 정치적 부패의 형태를 첫째 금전의 증수회에 의한 이권의 획득, 주식·토지 등의 할당에 유리한 조건 설정, 정실인사, 정치가로서 성실성의 결여, 예컨대 공익에 위배되는 법안의 통과 묵인 등을 들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가 감시인의 감시를 할 수 있을 것이냐?라는 서구의 격언처럼 막강한 권력형 부정부패를 어떻게 감시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우리가 오직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적 감시기능 또는 비판기능을 가진 언론이라는 공기이다.
언론과 정부가 너무 밀착하면 민의가 전달되지 않아 독선적인 정치가 되고, 극단적인 적대관계가 형성된다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된다.
언론과 정부는 비판적 안전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먼저 피감시자인 정치 권력측이 감시를 허용하고 비판의 소리를 수용하며, 정책에 반영하는 긍정적인 습성을 길러야 한다. 민주정치는 여론정치이기 때문에 여론을 형성하는 언론을 적대시해서는 민주정치가 성립될 수 없다. 그리고 언론의 개혁은 타율적 대상이 아니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진리를 처음부터 인지하였더라면 오늘날 국민투표 같은 극약처방을 거론할 필요가 없었으리라 사려된다. 이왕 실시할 바엔 조작이 아닌 진정한 국민투표가 되어 이것이 부정부패 척결과 민주정치 발전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이다.
박종식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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