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화 /솔트레이크대 교수·산악인
지난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고 태양은 타는 듯이 뜨거웠다. 겨울철에 붐비던 스노버드 스키장에 올라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또 더위를 피해 올라온 다른 등산객들과 대화를 나누곤 하던 일이 벌써 추억의 파일로 저장되고 이제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여름철 로키산은 말 그대로 바위 덩어리와 상록수류 나무가 전부인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가을이 접어들자 마치 쇼걸이 금방 다른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나듯 온 산을 노색으로 물들여 놓고 있다. 필경 활엽수 잎들이 단풍진 것일텐데 어디에 그 많은 활엽수들이 숨어 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오후가 되면 벌써 해는 서산으로 다가가고, 석양빛에 비치는 노랑 색깔은 온 천지를 덮어 버리는 듯 하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배경이 되어 노란색은 더 노랗고 푸른 하늘색은 더욱더 푸르게 보여 커다란 미술품을 보는 것 같다.
푸른 하늘을 쳐다보면 그 속으로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산에 가면 비행기가 그립고 비행 중에는 산행이 그리운 내 마음. 가끔씩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 어릴 적 고향친구 만난 듯 반갑다.
로키산맥에서 몇 번째로 높은 킹스피크의 1만3,000피트 정상에 오르는 길목에서 야영하던 날밤, 소나기와 천둥소리에 질려 땅에 엎드린 채 추위에 떨면서 밤을 새우던 일, 또 그 다음날 아침에 동행하던 은퇴 조종사 홀을 기쁘게 해주려고 그의 후배들이 정상에 닿을 듯이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을 해 주던 일들이 생각난다.
이제는 가을이다. 떨어지는 단풍잎을 보고 낭만을 느낄 파리의 가을을 생각하기에는 이곳의 가을은 너무나 짧다. 또 코스모스가 만발하던 한국 내 고향 철둑길의 그 고운 가을 정경과는 너무도 다른 그림이 되어 있다 .
벌써 높은 산 이곳 저곳에는 눈이 쌓여 있고 곧 산천이 흰 눈으로 탈바꿈하게 되리라.
무즈라는 동물이 있다. 꼭 말과 같이 생겼으나 말보다는 다리가 길고 사슴과 같이 뿔이 생긴 무즈는 사람을 멀리하는 동물이다. 새끼와 더불어 있을 때 근처에 사람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사람을 해치기도 하므로 곰보다 더 경계를 해야 한다. 어두워지고 하산할 때에 가장 무서운 것이 암컷 무즈다. 올해에도 희생된 등산객이 몇 명 있었지만 호랑이가 없는 로키산이 얼마나 고마운지 .
이 거대한 자연 속을 홀로 다닌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외로운 일이다. 무즈나 곰이 나타남도 겁이 나고 아슬아슬한 산길을 잘못 디뎌 낭떠러지에 떨어질 위험도 있고 또 산길 트레일을 잃어버리고 엉뚱한 곳으로 가 빠져 나올 길을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럴수록 산행 중에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산행의 피곤함이 온몸에 퍼져 저녁 들자마자 쓰러져 잠이 드는 산악인의 생활은 꿈도 희망도 모르는 산 속의 동물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자주 있다. 그래도 하늘과 산은 너무나 아름답다. 아- 하늘아, 푸른 하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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