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봉주/아케디아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고 허리케인 이사벨이 미국동부를 할퀴고 지나간 것은 9월이었다. 그 슬픔과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10월에는 덥고 건조한 샌타애나 바람이 산불을 휘몰아 남가주 일대에 동시다발적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우리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런 재해를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의 그 큰 위력과 섭리의 정교함에 놀라고 그에 맞서는 우리인간의 능력은 정말 보잘것없다는 절실한 한계를 보게 된다. 연일 타오르는 불기둥을 헤치며 소방관들이 지상과 공중에서 행하는 진화작전을 비웃듯이 샌타애나 건조한 바람은 불기둥을 이리 휘몰고 저리 휘몰고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온 세상을 다 태워 버릴 것같은 거센 기세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룻밤 새 그 덥고 건조한 바람이 방향을 바꾸고 비를 몰고 오면서 불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순식간에 진화되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하고 조롱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정말 그만하기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또 잊어버릴 것이다. 피해를 당한 많은 사람들은 오래오래 그 참상에 시달리겠지만 그 외 많은 사람들은 그냥 잊고 일상생활 속에 파묻혀 갈 것이다.
9월, 10월의 재난은 결코 일회성이 아니다. 해마다 겪는 연례행사가 된지 오래고 정도의 차는 있을 지라도 내년에도 또 닥쳐올 것이다. 그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원인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대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르지 못하는 한계성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 재해의 한복판에는 바람이 있고 비가 있고 불이 있다. 바람은 비를 몰고 또 불을 휘몰아 붙인다.
물은 만져볼 수도 있고 눈으로 볼 수도 있다. 불도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위험도를 알 수 있지만 바람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 높은 곳 낮은 곳 그리고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분다. 항상 자연 재해 앞뒤에는 이 바람이 심술을 부리고 있다.
잡을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면 우리는 바람을 피해 가는 슬기를 생각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 조상들은 결코 자연에 맞서지 않고 순응하여 피하는 길을 택해서 살 곳을 마련했다. 낮은 곳을 피함으로써 물을 피하고 높은 곳을 피함으로써 불을 피하고 산을 등에 지고 바람을 피해 살았다. 겁 없이 무조건 높은 곳을 선호하는 오늘날 우리는 이번 산불을 따끔한 자연의 충고로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결코 바람 잘 날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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