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렬(건축가)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나의 고교 동창 서유석의 ‘가는 세월’이란 노래가 뉴욕의 이곳 저곳에서도 불려지며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세모의 거울 앞에서 세월에 씻긴 내 자신을 비추어 본다. 너는 어디로부터 왔느냐? 너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냐? 너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냐? 라고 내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지울 수도, 다시 쓸 수도 없는 나의 생각, 나의 계획, 나의 선택, 나의 결단의 의지로 생겨난 작품,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작품 앞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젖어든다. 이렇듯 엄숙하고 진지한 것이 인생이었거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과 다채롭고 풍성한 인생의 차림표가 놓인 잔치 상에서 나는 고작 그런 메뉴를 골랐었단 말인가? 인생의 진미도 모른 채 폭음과 광무의 비틀거림, 과식의 포만과 식곤증으로 졸면서 낭비한 시간들은 졸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추억처럼 지난날도 힘이 되긴 한다. 슬픔도 흘러가면 빛나는 무늬가 되고 고통으로 기쁨의 크기를 재는 연습을 했었음에 감사하며 내일을 그려본다. 세월이 던지고 간 손익계산서를 들고 내용증명서와 함께 진실 증명서도 챙겨본다. 지난 일년이란 시간에 나는 무엇을 담아 보냈던가.
용서해야 할 사람을 용서했는가?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왔는가? 줄려다 다시 집어넣은 돈, 생각만 하다가 손을 못 댄 일, 만나보려다 포기한 사람, 쓰려다 못 쓴 편지, 그런 미련의 짐이 얼마나 무거웠었나? 날마다 배우고 날마다 새로워졌는가? 남을 위하고 이롭게 하는 일에 얼마나 투자했는가? 이런 것들을 점검해 볼 때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루지 못해도 비극, 이룬 후에도 비극, 비극을 껴안고 살아가는 존재. 이래도 저래도 인생은 미완성, 인생은 멈출 수 없는 진행형. 산 넘어 산, 정점에 오르면 종점이 보이고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인생.
미룰 수 없는 변화, 설명할 수도 없는 우연으로 가득 찬 인생, 논리적이지도 그렇다고 이성적이지도 않은 삶. 그때 그때의 관심과 열정에 충실하며 망상을 놓고 헐떡이는 마음을 쉬면서 내 것도 아닌, 네 것도 아닌 한 시절을 열심히 살아가야 하리라.
빌릴 수도, 빌려줄 수도 없는 이 시간, 저축도 할 수 없는 시간, 영원 속의 오늘, 영원 속의 현재, 그 절대적 시간. 오직 아끼고 아껴 써야 한다는 것만을 깨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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