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요리사와 결혼하면 혹 집에서 밥하는 걱정 하나는 덜겠다는 생각을 하는 예비신부가 있을 지 모른다. 요리가 특기이니 식구들이 얼마나 입 호강을 하랴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프로 요리사일수록 집에 가면 라면 하나도 끓이려 하지 않을 것 같다. 세계의 유명 요리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아마 절대다수는 집에 가면 아내가 해주는 보통저녁에 만족하지 거기에다 자기의 요리솜씨를 보탤 것 같지 않다.
한국 한 은행에서 여자 테니스부 주무를 했다는 은행원에게 들은 이야기도 비슷하다.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오면 ‘돈 없는 은행’에서는 국감위원이나 전문위원에게 접대 테니스로 로비를 했다는데 접대 테니스는 항상 테니스부 막내들의 몫이다. 테니스 선수들이 쉬는 시간에 가장 하기 싫어하는 것이 테니스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 언니들이 나오는 법이 없다.
글쓰기가 업인 사람이 퇴근해서도 글을 써야 한다면 고역이다. 짧은 글 하나라도 정신집중을 해야 하고, 이러면 편두통이 온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늘 쓰는 글이니 쉽겠지 하면서 글을 부탁하면 돈을 내고서라도 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코미디언하고 살면 매일 얼마나 재미있을까 생각할 지 모르나 유명 코미디언의 부인이나 자녀들이 잡지 등에 고백하는 것을 보면 한결같이‘우리 아빠는 집에서는 엄격했다’는 것이다. 웃기는 것이 직업이니 집에서만은 웃음 제조기 역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기분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가족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람 만나고, 사람 사이에 시달리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주말에는 굴속 같은 데서 혼자 웅크린 채 쉬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남 앞에서 한결같이 점잖아야 하는 직업은 허물없는 친구들 앞에서는 욕도 좀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이 있어야 다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그 거룩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주부의 직업이 웨이트리스라면 집에서는 남편과 자녀들이 좀 힘은 들겠지만 밥과 반찬 나르고, 상 치우는 일을 도맡아 해주는 것이 어떨까 한다.
일과 취미가 일치하는 행복한 사람이라도 탄성 한계를 벗어날 정도로 무리하게 되면 그 일은 피하고 싶어진다. 아무리 피카소라도 그림만 그리고 있으라고 한다면 언젠가 붓 자루를 던져 버리지 않겠는가.
이런 현상을 피하려면 일은 즐길 정도로 적당히 해야 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런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무리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거나, 현상유지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이민1세 중에는 죽지 않을 정도로 무리하면서 일에만 매달린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일탈(逸脫), 혹은 벗어남이다. 그래야 능률도 오르고, 창의력도 발휘될 여지가 있게 된다. 출근길 프리웨이의 체증에서 벗어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이민생활에서는 자주 느끼게 된다.
LA 북쪽으로 펼쳐진 미 서부지역의 등뼈인 시에라 산맥의 동쪽 사면은 지금 눈 속에 묻혀 있다. 지도에는 산맥의 이름만 나와 있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보면 말 그대로 일탈의 풍경이 펼쳐진다. 그런 속에서는 마음 이 편해지고 영혼도 자유로워진다.
음력으로는 어제가 설, 갑신년의 첫 날이었다. 일탈, 벗어남의 한 해를 기대하는 마음이 간절 하다.
안상호<부국장 대우·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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