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몰려 사는 곳의 하나다. 자그마한 구룡 반도와 홍콩 섬 일대에 600만이 넘는 중국인이 바둥대며 살고 있다. 홍콩은 또 전통과 첨단이 얽히고 설켜 있는 곳이다. I. M. 페이의 초현대식 건축물과 닭털과 오리털로 뒤덮인 장터가 나란히 공존한다. 지금 동남아 10개국을 휩쓸고 있는 조류 독감 희생자가 홍콩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997년 이곳에서 18명이 조류 독감에 감염돼 6명이 죽었으며 그 결과 140만 마리에 달하는 닭과 오리, 거위가 도살됐다. 한 동안 잠잠하던 듯 하던 조류 독감은 2001년 다시 이곳에서 발생, 애꿎은 가금들이 몰살당하는 수난을 겪었으며 2003년에도 2명의 홍콩 인이 조류독감에 감염돼 그 중 한 명이 죽었다. 그러다 올 들어 동남아 각 국에 이 병이 퍼지면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특히 건강에 관한 무슨 뉴스가 터지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에서는 아직 환자가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닭고기에 관한 수요가 급감, 양계장들이 문을 닫고 있다. 광우병에 이은 조류 독감으로 많은 음식점들이 파리를 날리고 있으며 잘되는 곳은 해물탕 집뿐인 모양이다. 심지어는 동물원에서도 동물 사료로 닭고기를 금지했다고 한다. 한 마리에 1,000만원씩 하는 사자가 죽으면 큰일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일반의 우려와는 달리 인간이 닭 같은 동물로부터 직접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는 극히 힘들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케이스는 몇 건에 불과하다. 오히려 조류 독감에 일단 감염된 사람을 통해 옮기가 훨씬 쉽다. 또 광우병과는 달리 고기를 끓이거나 튀겨 먹을 경우에는 걸리지 않는다. 조류 독감에 걸리기 싫으면 닭고기를 먹지 않을 것이 아니라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편이 현명하다.
이처럼 조류 독감이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데도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은 독감 바이러스가 계속 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감은 예방 주사를 맞아도 다음에는 처음과는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로 변해 인체를 공격하는 바람에 일일이 백신을 만들기가 어렵다.
과학자들은 모든 독감 바이러스는 새에서 전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원전 2,500년 경 인류가 새를 가축으로 길들이면서 독감의 역사도 함께 시작됐으며 닭과 오리, 거위가 인간과 함께 하는 한 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모든 가축이 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닭같이 불쌍한 동물도 드물다. 좁디좁은 ‘닭장’ 속에 갇혀 평생 알을 낳아 바치다가 나중에는 인간의 식탁에 올려진다.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조류 독감 소동은 대자연에서 자유롭게 뛰어 노는 새를 가둬 놨다 잡아먹는 인간이 져야하는 업보인지 모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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