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시간에 쫓기는 판이라 깜빡 잊고 목에 매달아야 되는 지갑과 안경을 미쳐 걸지 못하고 오버코트를 먼저 입었다. 할 수 없이 짊어지고 다니는 가방 호주머니 속에 쑤셔놓고 자동차를 몰고 정거장에 달려갔다.
깨끗하게 닦은 안경을 끼고 스크랩해온 신문을 보고, 노트북에 몇자 습관적으로 끄적거리고 난 후 책을 읽는 동안에 펜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읽던 페이지 몇 줄 마저 읽다가 맨 꼴찌로 내리는 손님이 되었다. 허겁지겁 코트 주워 입고 밖으로 나와 회사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고 보니 지갑을 목에 걸지 않았던 일이 생각난다.
아뿔싸! 왜 내가 지갑을 보지 못했지? 그 바쁜 중에도 뒤를 한번보고 내렸는데... 그 지갑을 목에 걸고 다니는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의 현금지출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매일 몇 백 달러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서랍 방 속에 열어 놓고 다니는 데다 사무실이 다 열려 있다. 그 서랍에 돈이 있다는 것을 우리 직원들은 다 알고 있다. 서로 믿기 때문에 한번도 걱정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최근에 임시직원으로 젊은 아프리칸 남자를 채용했고 하루는 돈이든 봉투가 눈에 띄질 않아 가슴이 철렁했다. 내가 보관을 잘 못해서 없어졌으니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의심하는 마음이 자꾸만 생기니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후에 돈 봉투는 엉뚱한 자리에서 나왔음).
가방을 내려놓자 마자 펜 스테이션 분실물 신고소에 뛰어갔다. 그런 물건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실물이 그곳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 크레딧 카드, 운전면허증, 은행 카드 등 무엇이고 다 분실신고를 하라고 일러준다.
돈은 누군가가 필요한 사람에게 주도록 없어졌나 보다고 위로를 할 수 있었지만 그 외의 카드들에 대해서는 심난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운전면허증이 없어졌으니 당장 운전을 할 수도 없고, 낭패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일일이 분실신고를 하겠다고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번호들도 모르고.. 맥이 쪽 빠진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남편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들어왔다. 전화 메시지를 체크해 보니 웬 여자가 자기가 내 지갑을 가지고 있노라고 한시간 후에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내 눈이 둥그래졌다. 금요일 저녁8시가 넘었는데 펜 스테이션 직원일 수는 없고 누가 그 지갑을 돌려주겠다는 것일까? 그 지갑이 다시 내 손에 들어올 확률은 1%도 아니 된다고 분실 신고소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지갑이 있대요” 너무도 기뻐서 소리를 지른다. 연초부터 운이 나쁘다고 침울했던 기분이 정반대의 기분으로 바뀐 것이다. 동시에 궁금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미 카드 분실보고도 끝냈고 돈은 없었던 걸로 마음을 정한 터라 그 1%에 해당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에 더 호기심이 갔다.
다음날 10시쯤 전화가 걸려왔다. 자기가 그 지갑을 가지고 있는데 차가 고장이 나서 우리 집으로 가져다 줄 수 없으니 와서 가져가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주소를 받고 찾아갔다. 리빙룸에 안내되어 들어가니 집이 아주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오밀조밀 예쁜 것들로 장식해 놓은 게 퍽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분위기였다.
“얼마가 들어있는지 기억하느냐? 무엇이 들어 있느냐?” 등등을 물어보고 거기에 그대로 있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자기가 여호와의 증인이고 자기의 양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에 이 지갑은 가질 수 없어 돌려주노라고 설명을 했다. 양심이 자유를 누리며 여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다.
그 사람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다. 또 기독교인들이 흔히 여호와 증인이라고 해서 이단시하면서 달가워하지 않는 종교인이다. 그리고 넉넉한 살림 같지도 않았다. 나는 이번 일로 득을 많이 보게 된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긍지를 가지고 사는 정직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편견을 없애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또 다시 얻게 된 것이다.
이숙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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