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모님이 은퇴하시면서 한인타운에서 빅터빌로 이사를 가시게 됐다. 집값이 싸다는 소문에 찾아본 빅터빌은 개발붐이 한창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허허벌판 사이사이로 깨끗한 신축 주택단지가 촘촘히 들어서고 있었는데 어찌나 집이 잘 팔리는지 수 차례 오퍼를 넣었음에도 셀러가 제시한 가격에서 단 한푼도 깍지 못한 채 흥정을 매듭지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수년간 매년 주택 판매량이 3배 이상 증가하고 평균가격이 거의 20% 증가했다는 통계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LA 거주자인 기자에게 빅터빌은 색다른 인상을 주었다. 상점이나 거리를 둘러보니 도심이 흑인과 히스패닉 일색이고 백인들은 먼 교외로 빠져나간 LA지역과 달리 백인과 소수계가 골고루 섞인 모습이 거의 ‘이색적’이었다.
맞춤한 집을 찾으려 이 동네 저 동네 부지런히 쏘다니다 시세에 비해 값도 비교적 싸고 구조도 마음에 드는 집을 하나 발견했다. 하지만 인접한 이웃집들에서 흑인 주민들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인종문제에 대해서는 그래도 꽤 진보적이라고 생각했던 본인도 솔직히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흑인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주택가치가 떨어질 것이니 피해야 한다는 계산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한편 시세가 비싼 이웃을 가보면 백인 주민이 멀리서 쳐다보며 텃새를 부리는 듯한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들 또한 집 값이 떨어질 테니 또 이사를 가야겠구나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좋은’ 백인마을과 ‘나쁜’ 흑인마을은 LA보다는 서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여전히 분리된 상태였다. 이곳 마지막 남은 변경에서 기대와 편견, 개척정신과 배타주의가 함께 섞인 미국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악순환의 일환인 현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결국 비교적 좋은 마을이라는 이글랜치에서 백인 노인들이 이웃인 주택을 구입하게 됐는데 마을에서 나오면서 자전거를 타고 노는 한 흑인 아이를 보고야 죄책감이 약간 풀리는 것 같았다. 장차 각 인종이 더불어 사는 마을로 발전하기를 바랄 뿐이다.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개인의 노력에는 너무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백인들, 그리고 우리 한인들이 살기 좋은 LA를 버리고 스모그에 묻힌 LA 동부, 이제는 먼 사막 빅터빌까지 가는 이유가 개인적인 편견을 넘어서 사회경제적인 현실 앞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무력함 때문은 아닐까. 여기서 무슨 해결책을 제시할 지혜는 없지만 정책적인 차원에서만 조금이나마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빅터빌에서 찾은 교훈을 굳이 한가지 들라면 이번 총선거에 정당을 통해서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살려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우정아<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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