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그친 뒤 대책회의… 예보·초기대응·구호체계 모두 뒷북
정부는 없었다. 충청 지역에 폭설이 내린 5일부터 6일 오전까지 정부의 재해 예고ㆍ예방, 초기 대응ㆍ관리, 긴급 구호ㆍ구조 시스템은 완전히 실종됐다.
‘고속도로 이재민’들은 추위와 배고픔, 공포감에 시달리며 노상에서 ‘무정부 상태’를 견뎌야 했다. 정부의 관계장관 대책회의가 열린 것은 눈이 멎고 난 뒤인 6일 오전 10시였다.
기상 예보는 이번에도 무기력증을 드러냈다. 기상청은 고속도로 마비사태가 시작된 5일 오전 9시가 지나서야 대설경보를 발령했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차량 진입을 차단하기 시작한 것은 고속도로가 이미 아수라장으로 변한 뒤인 오후 2시께였다. 결과적으로 기상청과 도로공사의 판단 잘못은 수만명의 국민들을 난데없는 이재민 신세로 전락시켰다.
건설교통부는 한 술 더 떠 5일 오후 8시까지 고속도로를 소통시키라고 도로공사에 ‘지침’을 내렸다. 도로공사는 제설장비조차 동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후 8시 통행재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2시간 단위로 ‘통행재개 연기’가 발표됐다. 통행이 재개된 것은 만 하루가 지난 6일 오후 8시였다.
사후 구호ㆍ구조 체계는 유명무실했다. ‘고속도로 이재민’들은 차량 연료가 바닥나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수십 리 눈길을 걸어야 했다. 군과 도로공사측이 헬기를 동원해 빵, 컵라면 등 비상식량을 투하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앙재해대책본부는 상황 대처는 커녕 피해 집계조차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6일 오후 7시 현재 피해집계 보고서는 건물 26동(18억원) 축사 1만2,392동(426억원)이 피해를 입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7일 오전 6시 현재 보고서는 건물피해 37동(4억원) 축사 2,075동(645억원)으로 집계했다.
피해 건물ㆍ축사가 늘거나 줄었는데도 액수는 반대로 줄거나 증가한 것이다. 엉터리 피해집계 보고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전달됐다.
재해대책본부의 부정확한 예측과 정보 제공은 사실상의 재난방송 부재 상황을 야기했다. 고속도로에 갇혀있었던 한 시민은 “언제까지 버티면 길이 뚫릴 지, 상황이 어떤 지 막막한 상태에서 방송은 정부 발표만 되풀이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같은 난맥상에 고건(高建) 총리는 6일 오전 10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폭설사태에 대한 관계 장관과 공무원들의 안이한 대응 등을 강도 높게 질책했다.
한 네티즌은 7일 언론사 홈페이지에 “이 한심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며 “이 나라의 무능한 관료들은 예방에는 세금을 쓰지 않고, 항상 다 부서지고 상처 패인 다음에야 혈세를 쓴다”는 글을 남겼다.
/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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