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 결정이라는 헌정사상 최초의 사건으로 한국에서는 충격의 소용돌이가 몰아치고 있다. 설마 진짜 탄핵이 이뤄지랴 했던 이곳 남가주 한인들도 막상 탄핵 가결 소식이 전해지자 찬반 여부를 떠나 모두 충격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탄핵 결정 후 만나본 한인들의 반응은 대략 노무현 대통령 지지 성향에 따라 갈리고 있다. 탄핵 찬성파들은 탄핵 결정이 “그동안 실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냐”는 입장인 반면 이번 사태가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차떼기’ 부패정당 이미지를 뒤집어 쓴 한나라당과 지지율이 땅에 떨어진 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위기감에 몰린 나머지 당리당략을 위해 밀어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한인들도 많다.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다수 야당의 탄핵 밀어 붙이기는 재래식 무기로 싸워도 될 것을 핵폭탄을 꺼내 쓴 것”이라느니 “×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쫓아낸 격”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 빨×× 즉시 쫓아내야 한다”는 등 막말 수준의 반응도 많았다. 어쨌든 이번 일로 인해 한국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절망감이 더욱 커진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상황은 다르지만 이곳 캘리포니아 주민들도 지난해 소환선거를 통해 그레이 데이비스 당시 주지사가 일종의 탄핵을 당한 것을 이미 목격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헌법재판소의 심판 절차가 남아 있어 노무현 대통령이 실제로 임기 중 퇴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나, 주민들에게 직접 의사를 물은 이곳 소환선거에서는 데이비스가 단칼에 주지사직에서 파면되고 말았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할리웃 스타 출신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상대역으로 등장했던 것도 데이비스에게는 악재로 작용했었지만 데이비스가 임기 도중 슈워제네거에 자리를 뺏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유권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주정부 재정적자의 책임을 그에게 물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주 재정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세금 인상없이 균형재정을 달성하겠다며 의료·복지예산을 포함한 대규모 지출 삭감 추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어린이 건강보험 및 이민자를 위한 메디칼 동결 가능성 등이 많은 한인들의 삶의 질을 위협하고 있다는 게 권익단체들의 주장이다.
힘겨운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는 한국의 탄핵정국보다 캘리포니아의 예산난이 더욱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심각한 재정난 앞에서 전통적으로 노동자와 소수계, 이민자들 편에 서온 민주당 의원들까지도 어느 정도 삭감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입장으로 바뀌고 있는 형국이다.
이민자의 입장에서는 한국 대통령 탄핵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오히려 주 예산안 논의가 어떻게 되는지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김 종 하<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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