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구 목사(호놀룰루한인장로교회)
신학계의 ‘살아있는 거성’ 하면 떠오르는 인물 중에 하나가 단연 독일 튀빙겐대학의 위르겐 몰트만(Jrgen Moltmann 1926-)박사가 아닌가 싶다. 그가 얼마 전 한국의 모 일간지와 한 교단이 주최한 ‘2004 영산국제신학 심포지엄’에 다녀갔다.
한 마디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표적 진보 신학자다. 그리고 한국에는 현재 경동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종화 목사와 연세대학교 신학과의 김균진 교수를 비롯한 잘 알려진 제자들이 있다. 1964년에 그는 ‘희망의 신학’이라는 대표적 저서를 발표해서 절망 중에 있는 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진보신학의 선두에 서서 전세계 신학계의 한 축을 이끌어 왔던 세계적인 석학이다.
몰트만 박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청소년의 나이에 독일공군 보조원으로 전쟁에 참전, 영국군에게 포로가 되어 벨기에, 스코트랜드, 잉글랜드 등에서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그는 역설적으로 희망의 개념을 찾았다고 한다.
특별히 그는 포로수용소에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자들은 예외 없이 병들어 죽어 가는 모습을 목격하곤 하였지만, 그러나 비록 절망 가운데 있으나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한결같이 건강을 유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로부터 저 유명한 ‘희망의 신학’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토록 몰트만 박사를 세계적인 신학자로 발 돋음 하게 한 이 ‘고난으로부터 희망으로의 신학’은 그의 신학 형성이 기초이자 본질을 이루는 중요한 신학적 방법론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표적 진보주의 신학자인 그가, 근본주의 신학을 옹호하는 교단의 국제신학 심포지엄의 주 강사로 참석해서 모 목사가 주창해온 ‘희망의 메시지’와 자신의 ‘희망의 신학’ 사이의 내용을 비교 고찰하였다는 사실이 여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우선 그는 개인적으로 그 목사와 자신의 신앙 여정이 (비록 동기와 관점이 다를지는 몰라도) 놀라울 만큼이나 유사한 점들이 많다고 지적하였다.
가령 그 목사가 17세의 나이에 폐결핵을 앓으면서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했듯이, 자신 역시 공교롭게도 17세의 나이에 영국군의 공습으로 죽음 직전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이후 포로 수용소의 역경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고 회상하였다. 그는 그 목사가 처절한 가난과 질병의 고통을 경험했던 것처럼, 자신도 2차 세계대전 중에 겪은 처절한 고난의 연속적 경험이 바로 ‘희망’이라는 신학적 주제를 성찰하게 된 계기였다는 것이다.
’고난으로부터의 희망’... 이것은 바로 몰트만 박사의 주요 신학이나 한국의 모 목사의 주된 메시지가 되기까지의 최대의 신학적 모토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것이 비록 정치적 동기든, 경제적 동기이었든 간에 몰트만 박사는 자신이 주창한 ‘희망의 신학’과 오순절 순복음 운동은 그래서 결국 공통의 ‘고난과 희망’이라는 영적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치병활동으로 독일 내에 영적 각성운동을 전개하였던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Christoph Blumhardt 1805-1880)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진술하였다. 그는 희망의 신학과 생명이 충만한 복음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적 의미를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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