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UN 건물 총격사건 스티브 김씨
▶ 시카고 사회적응센터로 옮겨
“전 동포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일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재판을 받는 동안,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저와 저의 가족들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시카고와 뉴욕 한인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2002년 10월 북한의 인권 상황을 규탄하며 유엔 구내에서 총기 발사 후 체포, 27개월형을 선고받고 뉴저지 포트 딕스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스티브 김씨가 14일 필라델피아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편으로 시카고로 귀향했다. 김씨는 오는 9월 18일 형기가 완전히 만료되는 시한까지 구세군이 운영하는 사회적응센터 ‘해프 웨이 하우스(Half Way House)’에 머물며 사회 준비 및 적응 기간을 갖는다.
그리 짧지 않은 기간동안 자유가 제한되고 사회와 격리된 곳에서 지내야 했던 사람답지 않게 해프 웨이 하우스에서 만난 김씨의 표정은 비교적 밝고 건강해 보였다. 본인의 범행 동기가 한반도 통일을 촉구하고 순수한 민족애 정신에서 우러나왔음을 법정에서도 이미 인정받은 때문인지 과거를 회상하는 김씨의 표정에는 미소와 함께 자부심마저 흘러 나왔다. “20에서 30만명 가량 되는 북한 난민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저는 UN이 이들에 대한 책임 의식을 통감하고, 무력을 제외한 어떠한 방법을 이용해서라도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의견만을 강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전 제가 한일에 후회는 없습니다.”
국민과 정부의 이목을 끄는데 꼭 총기 사용이라는 극단 적인 방법 밖에는 없었을까? “전 고위 관리도 아니고 유력 언론인도 아닌 평범한 시민에 불과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총을 쏘는 일밖에 없었죠. 그런 수단을 쓰지 않는다면 세간에서 저 같은 일반 시민의 목소리에 관심이나 가져 주겠습니까? 전 이번 일을 위해 2년 동안 사전준비와 치밀한 계획을 세웠지요.” 김씨의 범행 동기가 이미 TV와 신문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기 때문인지 TV 시청이 허용되는 교도소에서 김씨는 수감자들로부터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치러냈다’는 찬사를 들으며 성 앞에 ‘Mr.’가 따라 붙는 깍듯한 대접을 받았다고.
김씨에겐 그러나 수감돼 있는 동안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은 늘 가슴 한구석을 죄어오는 아픔이었다.
“교도소에 있는 동안 아내, 자식들과 가끔 통화를 했습니다. 지금 현재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닙니다. 아내는 몸이 아픈데다 의료 보험도 없어요. 제가 돈을 벌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사는 것도 엉망이겠지요. 아내가 한번은 ‘왜 자신의 생각만 했지 가족들 생각은 하지 못했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할말이 없더군요.” 김씨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동안 장인과 장모도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 대목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교도소에서 전기 기술자들을 따라다니며 일도 배웠고 TV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도 웬만큼 알기 때문에 다시 사회로 나가는 것이 그리 두렵지는 않다”며 “앞으로는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한 가족들을 위해, 또 나아가서는 어려움 속에서 힘과 용기를 심어준 동포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나타냈다.
<박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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