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민박집 불나자 잠자던 어린이들 대피시켜
23일 새벽 4시6분께 경기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C민박집. 서울 모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 캠프를 온 어린이들이 쌔근쌔근 숨소리만 내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B동에 32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새우잠을 자던 강모(15ㆍ서울 I중 2년)군은 잠자리가 좁아 몇 번이나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언뜻 눈을 떴을 때 방 옆 화장실쪽에서 빨간 불빛이 새나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불이 났다는 걸 직감했다.
벌떡 일어난 강군은 저도 모르게 불이야 소리를 질렀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깨웠다. 깊은 잠에 빠진 아이들은 금방 일어나지를 못했지만 다행히 장모(12 ㆍ서울 I초등학교 6년)군 등 3명이 일찍 잠에서 깨어나 강군을 도왔다.
A동과 C동에 있던 이 교회 부목사 박모(42)씨와 인솔교사 오모(38ㆍ여)씨도 B동으로 뛰어와 아이들을 대피시키는 데 합류했다. 아이들은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채 하나 둘씩 빠져나왔다. 중 2년생의 침착한 대응이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30여명의 생명을 구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잠을 자던 이모(12 ㆍ서울 I초등학교 5년)군을 발견하지 못해 이군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부상을 입어 인근 길병원 등으로 옮겨진 34명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은 벽돌 콘크리트로 지어진 민박집 B동 20여평을 모두 태운 뒤 44분여만에 진화됐으며 여학생과 교사들이 묵고 있던 A, C 동은 B동과 10여m 가량 떨어져 있어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B동에서 1m 떨어진 야외 화장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촛불을 사용했다는 학생들의 말에 따라 촛불이 건물 내부 목재벽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중이다.
여름 휴가철 이용객이 많은 민박집들은 소화기 등 화재진화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데다 다중이용시설이면서도 건축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민박집에 대한 근원적인 재난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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