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정
휄더린의 시구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를 되 뇌이며 타운패스를 지나자 곧게 뻗은 도로는 사라지고 굽이 길을 돌아야 시야가 트였다.
이는 길을 숨겨 땅의 생김새를 훼손하지 않고 경관을 그대로 두려는 미쁜 사람들의 자연보호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데스밸리는 2억년 전 바다 밑이 융기한 후 5,000년 전 소금물 호수가 말라 육지가 된 곳인데 길이 120마일, 폭 4~6마일의 광활한 넓이로 해저보다 86미터 낮고 1,000피트의 소금층이 있는 최고온도 섭씨 58.3도의 지역으로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연옥 그대로 였다.
길섶 소금물 웅덩이에는 이름 모를 자줏빛 꽃이 짜디짠 미소를 흘리며 저만치 홀로 피어 있고 사막호랑가시나무, 캥거루쥐 등 동식물 900여종, 희귀종 20여종, 야생 노새가 사는 끈질긴 생명의지의 가마솥 안이었다.
드디어 닿은 뱃워터, 세계의 오지이며 지구의 자궁 속. 연 강우량 2㎜ 미만으로 바닷물 염도의 10배나 되는 소금물에 생명이 살아 물거미 같은 작은 생물이 수면 위로 떠올라 숨을 쉬고는 투명한 호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작은 흔들림이 애련하다.
다시 발길을 돌려 엘리옷의 ‘황무지’와 오든의 ‘불안의 시대’가 함께 녹아있는 천연 한증막, 빛과 소금의 천지 위를 속세의 양말을 벗고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걸음으로 걷는다. 이 걸음으로 하나의 소실점이 되어 가마득히 사라지고 싶다.
아, 타는 목마름, 견고한 고독의 사랑이여. 문득 ‘산유화가’의 여인, 죽어서 산유화로 다시 피어난 넓은 천지에 몸둘 곳 하나 없던 절대고독의 조선여인 박향랑의 우울한 죽음이 가슴에 사무친다.
‘하늘은 높고 땅은 넓어 천지가 크나 / 이 한 몸 머물데 없어 차라리 이 물에 빠져 죽어 /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내리’
300여년 전 경상도 구미 금오산 자락에 살았던 박향랑이 강에 몸을 던지며 유언으로 남긴 노래다.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면 죽음도 그러한 것. 푸르른 달 밤, 가슴에서 겨드랑이로 차 오르는 차가운 물결 위에 떨어졌을 두 줄기 뜨거운 눈물에 슬픔의 강물은 불어나고 결국 그녀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보랙스 뮤지엄의 채광 장비에 호기심을 부려놓고 시카고의 백만장자가 남긴 스코티 캐슬의 허망한 부귀영화를 멀리 하고 자브라스키 포인트로 가는 길 위에서 한 떨기 소슬한 종교처럼 뜬 낮달이 해지는 편, 서녘으로 서녘으로 가고 있었다.
엊저녁 객창 밖이 서러운 이국의 밤, 부스스한 떠꺼머리 총각의 머리 모습인 팜트리 정수리에서 꺼져 가는 등불처럼 가녀린 달빛을 흩뿌리며 피곤한 문명에 지쳐 파르르 떨던 파리한 달이 아닌가. 드디어 닿은 자브라스키 포인트. 천지를 창조하던 절대자 하나님이 공사를 중단하고 잠시 쉬는 틈새에 쌓아놓은 야적장의 흙은 손가락 사이로 사르르 흘러보낸 듯한 흙의 퇴적이 도랑물에 얼굴을 씻고 고개를 든 주름진 농부의 이맛살 같기도 하고 거듭 주름진 번데기처럼 오랜 세월의 거센 물결에 깎이어 내린 미끄럽고 아름다운 벼랑이 모자이크 형상으로 펼쳐진 별천지였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나그네길이요 죽음은 스스로 감은 눈의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 없는 슬픈 상황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죽음의 계곡을 찾아 가속으로 달려 온 이 어리석음이여.
서부로 가는 먼지 자욱한 역마차의 행렬, 골드러시 때 지름길로 잘못 알고 들어선 개척자들이 구사일생 간신히 생명을 건져 벗어날 수 있었다는 죽음의 계곡 자브라스키 포인트 정상에서 나는 모든 그리움의 물꼬인 어머니, 고향, 조국을 향한 힘에 겨운 노스탤지어를 떨쳐내고 당차게 삶의 계곡으로 빠져 나왔다.
약 력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원
▲시, 산문집
▲’참을 수 없는 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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