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기스칸이 만든 규율 가운데 회교사회의 규범으로 자리잡은 것이 더러 있다. 그 중 식문화 또는 식관습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는 가능하면 다른 사람을 불러 함께 나누어야 한다” “여럿이 한자리에서 식사할 때 다른 사람보다 많이 먹는 것을 삼가야 한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식사하는 것을 보았다면 그를 불러 음식을 같이 나누어야 한다.” 적어도 먹는 것만큼은 공유한다는 관습이 지금껏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킬 만한 관습은 보전돼야 하지만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 관습도 관성의 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제정 러시아 시절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지역의 무슬림 거주지에서는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여겼다. 외출이 제한되고 이혼도 맘대로 할 수 없었다.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자 무슬림 여성도 이혼을 자유롭게 하고 원하는 옷을 맘대로 입을 수 있도록 시민권을 입법화했다. 여성 판사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회교원리주의자들의 반격이 거셌다. 권리를 누리려는 여성들에 대한 테러가 자행됐고 많은 여성들이 자유를 찾아 집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생계가 막막해지자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노예 같은 생활을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법보다 관습이 가까웠던 것이다.
회교국인 브루나이는 관습으로 움직이는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루나이 주민들은 아주 친절하고 부드럽지만 무엇을 가리킬 때 엄지 대신 집게손가락을 사용하면 ‘막돼먹은 놈’ 취급당한다. 또 미혼남녀가 일몰 뒤 가까이 서 있거나 앉아 있다가 순찰요원에 적발되면 벌금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철창신세를 질 수도 있다. 관습이 이렇게 법으로 정착한 것이다. 관습의 파괴력의 증거다.
한국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대1의 다수의견으로,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조선이래 600여년간 규범적으로 굳어진 관습헌법이므로 헌법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위헌결정을 내렸다.
수도이전에는 헌법재판소만 반대한 게 아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다수가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결정 자체를 시비 걸 일은 아니다. 그런데 헌재의 결정이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사회갈등을 증폭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관습법은 판례법과 함께 불문법의 한 축을 이루지만 불문법을 적용하는 나라에서도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명문화된 법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륙법 체계인 성문법을 따르는 한국에서, 게다가 헌법을 다루는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의 결정적 근거로 하고 많은 성문법 조항 대신 ‘관습’을 제시했다는 점은 ‘이국적 풍취’마저 느끼게 한다.
<박봉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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