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국 / 전 서강대 경상대학장·포토맥, MD
지금 세계는 북미에 NAFTA, 유럽에 유럽연합의 두 거대한 무역 블록이 군림하고 있다. 1998년 4월에 서반구, 북남미주의 34개국으로 구성되는 FTA 협정을 2005년까지 완성시키자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이렇게 FTA는 세계의 도도한 조류를 이루고 있다.
레이건 행정부는 태평양 연안국가를 연결하는 FTA 협정 타결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이것은 유럽의 ‘유럽 요새화’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었다. 호주는 자국 상품 중에 미국과 경쟁적인 부분이 많아 스스로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나머지 국가는 일본, 한국, 대만, ASEAN 국가들이었다. 대만은 중국과의 정치적 고려로 제외되고 ASEAN 국가들은 질서를 찾기 어려워 제외하였다. 일본은 분배조직의 구조상 특수성, 기술, 의료, 안전도에 관한 법적 제약의 규정상 FTA 협정 하에 무역의 균형을 달성하기는 어렵다는 판단 아래 역시 협상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미국은 한미 FTA 협정의 체결을 위해 일찍이 적극성을 보여왔다. 미국은 1988년 말부터 89년 초에 걸쳐 국제무역협회의 대표를 한국에 파견하여 한국 정부의 의향을 타진한 바 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북방정책의 환상에 눈이 어두워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한국은행으로 하여금 그 입장을 대변시켰다. 한국은행은 “이 협상에 가입하면 한국의 미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종속성을 심화시키고 제3세계에서 고립을 초래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여 미국에 등을 돌렸다.
김영삼 정권은 초기에는 한미 FTA 협정 체결에 적극성을 보였다. 한승주 당시 외무부장관은 1994년 1월25일 ‘한미친선협회’에서 한 연설에서 “한국이 북미주 지역 FTA 협정에 가입하면 한국은 북미와 동아시아 제국과의 가교역할을 한다”고 역설했다. 캐나다의 외무부 부차관보 하워드 볼락은 한국의 NAFTA 가입을 환영한다는 캐나다의 입장을 비공식석상에서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이때 돌발한 북한의 핵 문제로 말미암아 한승주 외무부장관의 3국 순방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후 북한의 핵 문제는 진정국면에 들어갔으나 한국의 NAFTA 가입문제는 다시 햇볕을 보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내세워 북한에 융화정책을 시도하였고, 드디어 스스로 북한의 김정일을 방문하였다.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는 반미사상이 고조되었고, 걸핏하면 촛불시위가 유행되고 노동조합은 집단시위를 일삼고 있다.
1997년 3월 미국 상원 재정위원회(ITC)는 한국과의 FTA 협정 체결은 한국의 정치적 현실에 비추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ITC는 그 보고서에서 “한미 FTA 협정 체결은 한국의 반미사상을 고조시키고 무역의 마찰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한국을 FTA 협상 거부국가 제1호로 분류하여 놓고 있다. 당면한 문제는 한미 FTA 협정이 실현되면 한국의 현 경제난 돌파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실리와 편의를 제공해줄 것인가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 해답은 1958년 5월 미국-이스라엘 간에 체결된 FTA 협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협정은 이스라엘의 미국과의 정치적 유대를 강화시켜주는 이점이 있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이스라엘로부터의 구매활동을 조장시켰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미국의 FTA 협정은 한국의 국제무역질서 안에서 고아신세를 면하게 해주고, 거대한 미국시장에 접근시켜주며, 미국의 한국자본시장에서의 투자를 촉진시켜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자연스러운 협력자 관계에 놓여 있으며 미국과의 FTA 협정 체결은 이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시켜줄 것이다. 현 경제난 타결에 이런 방안을 두고 무엇을 헤매고 있는지? 기껏해야 아무 실리 없는 칠레와의 FTA 협정을 체결하였으니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크리스토퍼 현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9월22일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조찬강연회에서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한미 FTA 협정이 꼭 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정부의 반응은 아직 듣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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