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하<주부>
바른말을 하지 못하면 입이 근질대는 나는 참지 못하고 꼭 한마디씩 해서 상대의 속에 상처를 내고야 마는 나쁜 버릇이 있다. 바늘로 찌르듯 칼로 도려내듯, 아무도 차마 꺼내지 못하는 그 한마디를, 마치 정의의 사도나 된 듯 일격에 이단 옆차기로 상대의 급소를 향해 날려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사명인줄 알았다. 비양심적인 사람들은 맞아 싸다고 생각했고 속으로 은근히 통쾌해했었다. 그러나 되짚어 생각해 보면 이런 방법으로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의 통쾌함과는 달리, 상대방의 비 양심을 더욱더 강화시켰음은 물론, 개인적으론 깊은 수치심과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을 것이고, 그로 인해 문제의 해결이 아닌 대화의 단절을 초래 했으며, 나로 인해 속 시원했을 거라 믿었던 주위의 사람들 역시 나의 과격함에 질려 속을 걸어 잠그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야 하나 둘 나의 못남을 깨닫고 고쳐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생을 배워간다는 것인가?
나는 언제부턴가 겸손을 연습하게 되었다. 상대가 그럴 수 밖에 없었을 상황을 먼저 이해 해 보자. 그리고 상대를 판단하고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의 해결점을 위한 대화로 풀어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만만한 게 아니었다. 입이 근질거리기는 마찬가지여서, 먼저 나는, 아예 혀를 물고 입을 닫는 연습부터 하기로 했다. 아무 말 하지 말자. 지혜로울 자신이 없으면, 경박스럽지나 말자. 감사하게도 이건 그런대로 성공적이었다. 그 다음단계로 나는 겸손의 모습을 흉내 내 보기로 했다. 진심이 아니더라도 겸손한 사람들이 했을법한 말을 해보는 것이다.
이 역시 어려웠다. 나의 본심이 아닌 말을 지껄이는 내 자신이 가증스러워 견딜 수가 없겠는걸 어쩌랴. 꾀를 냈다. 내 주위에 있는 겸손한 인간들을 모델로 삼아 그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늘, 항상, 어김없이, 어느 때나, 빈틈없이, 완벽하게 겸손하다는 것이다. ‘아!, 저럴 수가!..’ 탄성을 지르며, 좀더 깊이 있는 연구에 들어갔다. 내가 발견한 것은, 그들 겸손한 인간들은 자신들이 진짜로 낮은 자리에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식적으로 낮은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낮은 자리에 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겸손은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드디어 겸손의 실체를 발견했다. 그림자처럼 향기처럼…, 그 모습을 위한 모습이 아니라 어떠한 도에 도달했을 때 저절로 묻어 나오는 것이라는걸. 속 깊은 데서 먼저 겸손해야 참 겸손의 모습이 나온다는 걸. 이제 슬슬 다음단계에 착수할 때가 왔나 보다. 먼저 낮은 자리로 걸어 내려가는 연습!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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