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 결과가 세계를 놀라게 하면서 미국에서는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줄기세포는 한 마디로 말해서 난자에서 핵을 빼낸 후에 그 자리에 환자의 체세포를 넣어서 배양한 세포이다. 이 세포를 각 기관의 조직세포로 분화시켜 배양에 성공하면 환자에게 거부반응 없이 이식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멀쩡한 난자의 핵을 빼내는 것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일종의 살인행위이며 앞으로 핵을 빼낸 난자에 다른 사람의 체세포를 넣어 똑같은 사람을 복제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도덕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은 이미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고 있는 상태이며 한국은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국가 차원의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미 연방정부는 2001년 줄기세포의 연구에 연방기금의 사용을 금지했고 대통령 직속 생명윤리위원회는 연구 반대를 주도해 왔다. 연방하원이 줄기세포 연구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가결하자 부시대통령은 거부권 행사를 위협했다. 보수적인 기독교 윤리에 투철한 부시대통령이 이 연구를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있다.
생명윤리에 관한 논쟁은 한 마디로 가부를 결정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였으므로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이 인간을 만들거나 파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과학의 진보와 함께 기독교적인 관점도 변해온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기독교가 종교적 신념을 고집하여 우주에서 지구가 중심이며 자연에서 인간이 중심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오늘날 과학의 성과와는 사뭇 다른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는 지동설이 교리에 어긋난다고 하여 종교재판으로 다루었으나 결국 과학적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종교가 엄연한 진리를 부인한다면 그 종교의 수명은 끝나고 말 것이다. 기독교는 과학적 성과로 인해 갈등과 진통을 겪으면서도 과학적 진리를 수용함으로써 오늘날 과학시대의 지배적 종교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이 세계의 지도 국가가 된 것은 풍부한 자원과 정신적 유산에도 기인하지만 과학의 힘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미국은 현대문명의 기초가 되는 전기와 원자력, 컴퓨터를 만든 나라이다.
앞으로는 각국의 우열이 과학에서 결판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과학의 발전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과학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21세기의 과학분야는 하이텍과 바이오텍, 즉 첨단산업과 생명공학이며 생명공학에서는 줄기세포 연구가 핵심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모든 나라가 앞을 다투어 줄기세포 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 때 미국만 연구를 규제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과학 후진국으로 낙오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게 될 것이다.
과학의 진보가 생명존중의 윤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도덕적 사상을 견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미국만 줄기세포 연구를 규제한다고 세계가 동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른 나라들이 선두주자가 되려고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므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규제는 인류 전체의 합의로 이루어져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줄기세포 연구에서 다른 나라에 뒤지게 될 경우 세계 각국에 줄기세포 연구의 규제를 제의할 위치도 가질 수 없다. 미국이 핵무기를 대량 보유하지 않았다면 핵 규제를 들먹일 처지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약 원자탄이 비윤리적인 대량살상무기라고 해서 미국이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독일이나 일본이 개발하여 세계 지배의 수단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비윤리적인가. 미국은 당연히 줄기세포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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