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테러 위협 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이라크 전쟁을 시작한 것이 2003년 3월 20일이었고 개전 40여일 만인 5월 1일 공식으로 전쟁 종료가 선언됐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전쟁기간 보다 전쟁이 끝난 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저항세력의 무장공격과 자살테러로 수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미군과 이라크 군경 및 민간인 희생자가 하루도 쉬지 않고 속출하고 있다. 이라크는 전선이 어디인지도 확실치 않은 전쟁 아닌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이처럼 치안이 엉망이 되면서 일상생활이 불안하게 되니 경제가 잘 될 수가 없다. 전력 생산량과 석유 수출이 후세인 시대보다 격감한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다수파로 등장한 시아파와 후세인 당시 집권세력이었던 수니파간의 정치적 갈등은 앞으로 내전의 위기로 치달을 우려마저 있다고 한다.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킨 후 민주주의를 심으려던 미국의 계획이 벽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제2의 베트남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민주당 뿐만 아니라 공화당 내에서도 이라크에서 철군해야 한다는 압력이 점증하고 있으며 의회에서는 철군 일정을 결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의 강경 세력은 철군 일정을 거부하고 있다.
이라크 주권 이양 1주년을 맞은 지난 28일 부시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이라크의 현지 군경 및 치안인력이 자체적인 국가 안보와 치안능력을 갖출 때까지 미군이 임무를 완수할 것”이라고 했다.
이라크 전쟁은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사담 후세인이 9.11 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과 연관되어 있고 대량 살상무기를 만들어 테러 조직을 지원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라크 점령 후 이러한 혐의에 대한 증거가 충분히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그가 반미적인 존재였다는 점에서 이라크 전쟁은 그런 대로 미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미군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15만의 병력을 계속 주둔시켜야 하는지, 또 언제 이루어질 지도 모르는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무작정 주둔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는 기준은 철저하게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 자체의 특성처럼 결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는 전면전이 아니라 소수의 정예
부대와 고도의 정보조직을 이용하여 수행하는 장기전이 되어야 한다. 이라크 전쟁에서는 이라크의 정규군을 분쇄하기 위해 미군이 대량 투입되었지만 전면전이 끝난 후에도 저항세력의 테러에 맞서 정규군 부대가 전면에 나서면 피해만 클 뿐 효율성이 없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볼 때 테러를 조장하거나 지원한 나라의 정권을 붕괴시키는 것은 테러의 배후 세력을 뿌리뽑고 응징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다. 그 자리에 완전한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일이겠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누가 도와주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단시일에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이라크의 민주주의는 이라크 사람들의 희생과 갈등 속에서 오랜 시련을 이겨내야만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에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착각이며 과욕이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율이 개전 당시 70% 이상이었으나 지금은 50% 아래로 떨어졌고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날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런데도 부시대통령은 개전 당시와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상황이 바뀌고 있는데 똑같은 말만 한다면 문제가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 매달려 더 이상 국력을 소진시켜서는 안된다.
이제는 이라크 문제에서 현명하게 손을 떼는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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