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장준하 선생 30주기… 시신 첫 목격 이수기씨 밝혀
생전의 장준하씨(왼쪽)/이수기씨
“몸에 상처 하나 없는데 어떻게 추락사라고 할 수 있습니까.”
17일은 장준하(張俊河ㆍ1918~1975) 선생의 30주기가 되는 날. 1975년 이날 경기 포천군 약사봉에서 재야운동가 장준하씨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30년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당시 경찰관으로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해 시신을 목격한 이수기(59ㆍ사진)씨가 15일 그때 그 기억을 털어놓았다.
당시 순경으로 포천경찰서 이동지서에 근무하던 이씨는 사건 후 3개월만에 다른 지서로 옮겼으며, 고향 광주에서 근무하다 2년 전 퇴직했다. 이씨는 “사고 당일 근무 중 경기도경으로부터 비상 경비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갔다”면서 “도경에서 먼저 사고 소식을 안 것은 장 선생의 집이 도청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서에서 4㎞ 정도 떨어진 현장 입구에서 장 선생의 일행이라고 밝힌 등산객들의 안내를 받았는데 현장에는 의료진으로 보이는 군인 2~3명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며 “사고 사실을 맨 처음 알린 김씨라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장 선생의 몸은 14㎙ 높이 절벽에서 떨어졌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고 몸에 핏자국이나 상처 하나 없었다”며 “귀 뒷쪽에 상처로 보이는 점 같은 것이 눈에 띄었다”고 또렷이 기억했다.
이씨는 2001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현장 조사 때 안내를 맡는 등 의문사위에 9번이나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그는 “김씨라는 사람과는 2001년 의문사위에서 대질신문을 했는데 당시 자신이 현장에 있었고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해 당황했다”면서 “현장을 처음 본 경찰관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추락사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장준하 선생 사망과 관련 의문사위는 1기와 2기에서 모두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했으며, 최근 국정원 과거사진상우선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그의 30주기 추모제는 17일 오전 경기 파주시 광탄리 천주교 나자렛묘지에서 열린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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