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 기념 재단(회장 정홍택)이 창립 30주년을 맞아 재단 창립 멤버 8인 중 현재 필라에 거주하고 있는 4인 초청 간담회를 개최해 재단 설립 의미를 되새기기로 한 가운데(본지 8월 27일 자 A 15면) 핵심 창립 멤버였던 윤두환 박사(74 심장 전문의, 펜 주 인권 위원회 커미셔너)가 서재필 박사의 직계 후손들을 추적, 이들을 추모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윤두환 박사는 최근 필라 교외 첼튼 힐 세미트리에 있는 서 박사의 두 자녀 스테파니 보이드 씨와 뮤리엘 제이슨 씨의 묘지를 둘러보고 서재필 재단이 설립되던 30년 전을 회고했다.
윤 박사는 지난 1974년 9월 자택에 7명의 발기인을 초청, 서재필 기념 재단 설립을 논의한 뒤 당시 생존했던 서 박사의 두 자녀 스테파니 보이드 씨와 뮤리엘 제이슨 씨에게 이를 알렸다. 이들은 아버지 서 박사의 한국(조선)에서의 행적이나 비중 등을 잘 몰랐다가 윤 박사 등 발기인의 설
명을 듣고 난 뒤 서재필 기념 재단의 설립에 찬동하고 적극 후원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1월 서재필 재단이 노스 필라 로간 지역에서 창립됐다. 장녀 스테파니 씨는 1982년 별세한 뒤 유산 25만 여 달러, 차녀 뮤리엘 씨는 1984년 사망한 뒤 유산 23만 여 달러를 멜론 뱅크에 신탁 기금으로 적립했으며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를 전액 서재필 재단에 기증토록 유언했다. 이들 두 자녀의 신탁 기금은 현재 80여만 달러로 증식했으며 여기서 나오는 연간 이자 수 천 달러는 재단에 기증돼 운영 자금으로 사용되고 있다.
윤두환 박사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아버지 서 박사의 비서로 활동했던 뮤리엘 여사가 남긴 유서에 재산 정리 후 남은 유산을 서재필 재단에 기탁한다고 명시할 정도로 서재필 재단 창립 당시부터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면서 “재단 설립 30주년을 맞아 서 박사뿐만 아니라 그 혈육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필 박사의 혈육은 대가 끊긴 상태다. 그는 19살 때 갑신정변을 일으키기 전 이미 결혼해 자녀 한 명이 있었으나 갑신정변 실패 후 역정 집안으로 몰려 몰살당했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 후 명문가 집안 딸인 뮤리엘 조세핀 암스트롱 여사와 재혼했다.
서 박사는 고종이 갑오경장을 실시하면서 갑신정변 주동자에 사면령을 내림에 따라 망명객의 신분에서 미 시민권자로 탈바꿈했으며 1896년 한국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서 박사는 장녀 스테파니를 낳았고 후에 차녀 뮤리엘 등 두 딸을 두었다. 스테파니는 하디컨 씨와 결혼해 필립을 두었으나 이들은 각각 1982년과 1993년에 작고했다. 차녀 뮤리엘은 독신으로 1984년 별세했다. 서 박사는 1930년 부인 뮤리엘 여사가 작고한 뒤 현재 서재필 기념관으로 탈바꿈한 미디어의 자택에서 차녀 뮤리엘과 살다가 1951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서 박사의 유해는 1994년 한국으로 이장돼 국립묘지에 안장됐
다.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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