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랑을 다른 사랑으로 메우려다 실패하는 여자 문소리의 연기가 아름답다.
출품작 5편… 기대 못미쳐
주인공 문소리 열연 ‘사과’ 국제비평가상 받아
‘친절한 금자씨’ 폭력성에
NYT등 주류언론 호된 질책
한국 영화는 모두 5편이 출품했다. 한국 영화는 이제 국제무대에서 각종 상을 휩쓸면서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언론과 영화업자들로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명세감독의 ‘형사 Duelist’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의 시사회 때에는 두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는 2개관이 모두 초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5편의 영화 중 ‘사과’를 제외한 나머지 4편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이명세 감독의 ‘인정 사정 볼 것 없다’(1999) 이후 6년만에 만든 ‘형사’는 시각 스타일리스트 이 감독의 이름이 해외에 잘 알려져 상영시작 30분 전부터 극장 앞에 관광객들이 긴 줄을 쳤다. 처음부터 요란한 음악과 특수효과 및 카메라 테크닉을 마음껏 구사한 야단스런 촬영으로 혼을 빼놓았는데 상영 10분 후쯤부터 일부 관객들이 자리를 떴다.
안성기와 하지원이 이조시대 명형사로 나와 위조엽전 제조범을 잡느라고 칼부림을 하는 코미디 액션 사극이자 로맨스가 있는 장르를 짬봉한 영화다. 하지원이 이조시대 여자로선 너무 현대적이고 과장된 코믹 연기를 한다. 그리고 음악도 한국 고전음악에서부터 탱고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르의 음악을 사용했는데 세트티가 너무 나는 꼭두각시극 같았다. 외국 판매를 목적으로 한국적불명의 영화다.
칸 영화제서 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nce)는 그의 복수 시리즈 마지막 편. 새디스트 박 감독은 이 복수 시리즈의 지나친 폭력과 잔인성 때문에 뉴욕타임스 등 일부 미 언론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는 시리즈 제 1편(복수는 나의 것)과 제 2편(올드보이)보다 잔인성은 덜 했지만 시뻘건 피가 범람하기는 마찬가지. 억울한 옥살이를 한 금자(이영애)가 출옥 후 식칼로 손가락부터 자른 뒤 복수를 하는 얘기. 블랙코미디 스릴러인데 이영애가 독한 여인으로서는 미흡했다.
나는 똑똑한 박 감독의 폭력의 의미에 의문하는 사람인데 나 외에도 영화제에 참석한 동료 LA영화협회회원들인 밥 콜러(버라이어티), 스캇 화운다스(LA 위클리) 및 피터 레이너(뉴욕) 등도 그의 심술부리는 듯한 폭력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궁정동 박정희 대통령 살해사건을 다룬 ‘그때 그 사람들’(President’s Last Bang)은 이미 비디오로 봤는데 나보다는 동료 회원들이 더 좋아했다. 욘사마의 주인공 배용준이 손예진과 나온 ‘외출’(April Snow)은 내가 좋아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허진호의 작품이어서 기대를 했었다. 교통사고로 중태에 빠진 불륜관계인 두 남녀의 아내와 남편이 병원서 만나 맞바람을 피우는 얘기인데 습작 수준의 멜로물. 배용준과 손예진이 어른이라기보다 아이들 같아 불륜의 사랑을 하는 게 무슨 소꿉장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연기도 매우 미숙하고 성격 개발도 제대로 안된 감정의 깊이가 모자라는 영화였다. 허 감독이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보여준 그 미묘한 감정의 모습이 아쉬웠다.
뜻밖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가 ‘사과’(Sa-Kwa)였다. 강이관 감독의 데뷔작으로 사랑에 데인 여자의 자기 각성의 드라마다. 현정(문소리)은 애인에게 버림받은 뒤 자기에게 집요하게 구애하는 회사원과 데이트 끝에 결혼을 한다.
그러나 결국 이혼하는 이 영화는 자기 식으로밖에 사랑 못하는 모든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문소리의 연기 때문에 평범한 얘기가 강하게 어필해 온다. 철딱서니 없던 여자가 사랑에 실패한 뒤 반듯하고 강한 인간으로 바뀌는 모습을 티 안내고 보여준다.
보고 난 뒤 더 생각나게 만드는 문소리의 연기가 아름답다. 이 영화는 토론토 국제영화제서 세계 최초로 상영되는 신인감독에게 주는 국제비평가상을 받았다.
박흥진 편집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