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7일자 뉴욕타임스에 모스크바 중심가에 있는 200~300년이 넘는 고 건물들이 어떤 식으로 개발업자들에 의하여 사정없이 현대식 빌딩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사가 실렸다. 비협조적인 거주자들을 명색뿐인 법의 힘을 빌어서, 돈으로 구워삶아서, 그것도 안되면 폭력이나 방화등의 범죄 수단을 통해 쫓아내고서는 고색 창연한 건물들을 헐고 무미건조한 새 빌딩들을 짓는 모양이다. 돈과 권력에다 조폭까지 거느린 벼락부자들의 횡포 앞에 서민들은 도리 없이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그 글을 읽으면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일주일 넘게 견뎌야 했던 뉴올리언스 빈민들의 참혹한 모습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 한편은 70여년 공산주의 실험에 실패한 나라로서 자본주의로 전환하느라 자본주의 초창기의 소위 강도 귀족들(robber barons)의 험난한 시대를 지나고 있는 나라이고 다른 한편은 세계에서 가장 성숙하고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로서 자신의 모델을 다른 나라에 무력을 불사하면서 전파하고자 하는 나라이다.
권력이나 돈가진 사람들에게 잘못 뵈면 가차없이 짓밟히면서도 이것이 다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의 희생이겠지 하고 견디는 러시아 사람들이 성숙한 자본주의 국가이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뉴올리언스의 빈민들과 같은 처참한 현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카트리나 폭풍으로 미국의 빈민층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력한 계층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그 의무 수행에 있어서 얼마나 무능한지가 들어난 후 많은 미국인들이 일종의 우울증에 빠졌다. 과연 이 나라의 체제 자체가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회의이다.
독립전쟁을 시작했을 때부터 민족국가가 아닌 미국은 그 존재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합리화할 필요를 느껴 왔다. 역사적으로 미국인들은 그러한 욕구의 충족을 토마스 제퍼슨의 독립 선언서와 지금도 전 세계에 모범으로 여겨지고 있는 미국 헌법으로부터 찾아 왔다.
미국 헌법의 전문은 정의구현, 국내안정의 확보, 국토방위 및 총체적인 복지와 자유의 축복을 추구 확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빈민층에 대한 정부의 의무 수행 실패, 엔론 스캔들 등에서 드러난 정경 유착과 부패, 가족들 사이에서도 정치 토론을 회피하게 만들만큼 첨예하게 갈라져 있는 여론, 이라크에서 끝도 없고 이길수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미군, 지난 5년 간 급속한 속도로 증가한 빈곤층의 숫자, 애국법을 통해 날카롭게 제한된 시민 자유권 등을 고려해 볼 때 과연 현재의 미국이 헌법 전문에 명기된 그 다섯가지 목적들 중 어느 하나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의심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카트리나 피해 복구작업에 부시 대통령은 2,0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쓸 것을 호언하고 있다. 그 금액 전체가 우리의 자손들이 물려받게 되는 부채가 될 것이라는 걱정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수억 달러의 무입찰 또는 약식 입찰을 통해 계약을 무더기로 받아내고 있는 회사들이 대부분 부시 대통령 또는 체니 부통령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할리버튼 또는 쇼우 그룹 계통의 회사들인 것을 볼 때, 그 천문학적인 금액의 얼마가 과연 미국 헌법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여 사용될 것인지 걱정된다.
김철회
법정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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