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는 많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도 한인들이 나눔의 삶을 실천하였다. 그 결과 한인사회는 훈훈한 감동의 소식이 넘쳐났다. 내가 받은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 그것이 진정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밝게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실천한 조그만 이웃사랑이 소외되고 힘든 이웃에게 전해졌다면 이것은 정말 그들에게는 커다란 힘이요,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브니엘 선교회의 김명희(52. 뉴 하이드 팍 거주) 선교사는 이런 취지를 가 지고 지난 10년간 할렘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소외되고 빈곤한 지역에 사는 홈레스들과 아동들을 대상으로 희망과 믿음을 심어주는 그리스도의 참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김 선교사가 이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가까운 이웃이 소외되고 상처가 많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한인교회들도 많이 성장해 힘을 합치면 충분히 그들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이제는 많은 교회들이 동참, 이 사역을 돕고 있으며 각 교회 여전도회에서 적극 나서 돌아가면서 이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한다. 또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사역에도 영어권 교회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동참, 한인 2세 교사들이 직접 나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 결과 많은 한인교회들과 봉사자들이 참여해 1세와 2세들이 같이 협조, 팀웍을 이루어하는 아름다운 사역이 되었으며, 홈레스와 어린이들이 도움 받는 두 흑인커뮤니티 지역에서도 김 선교사가 하는 일을 인정, 아주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브니엘 선교회가 하는 이 일이 한인교계 내에서도 점차 알려지면서 돕는 교회도 늘어나고 있다.
김 선교사가 이 일을 하기 위해 처음 찾은 곳은 할렘의 흑인교회였다. 그 곳에서 그의 뜻을 전달하고 시작한 것이 어린이 청소년 사역이었다. 토요일마다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한인교회 영어권 2세 교사들의 협조로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거리에서 전단지나 설득을 통해 모았다. 그래서 모인 어린이가 처음에는 10명 미만이었는데 점점 소문이 나면서 40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나 이 활동은 1년 만에 사정이 생겨 중단되고 말았다.
그 후 곧바로 시작한 것이 홈레스를 돕는 사역이었다. 이 일은 매주 화요일에 실시되는데 지금까지 9년간 쉬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다. 초기에는 40명이던 홈레스가 이제는 250명으로 늘어났다. 브니엘 선교회는 이 프로그램에서 홈레스들에게 예배와 함께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이 일에는 각 교회에서 10여명의 전도사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해와 돕고 있다. 처음에는 김 선교사가 혼자 했는데 1년 후부터는 박신화(신성장로교회)씨가 동참하고 6년 뒤에는 오숙희(중부교회 )씨가, 또 1년 전부터는 문성숙(반석교회)씨가 합류했다. 중단된 어린이 돕기 사역은 5년 만에 ‘explore’ 프로그램으로 다시 부활, 지금까지 계속돼 오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들은 점심을 비롯, 성경공부, 찬양과 율동, art & craft, 게임 등을 제공받고 있다. 1996년도 10월 선교를 목적으로 시작된 이 일은 이제 많은 뜻있는 한인교회들과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점점 그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각 교회와 교인들의 도움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 브니엘 선교회는 이 사역의 성공을 위해 출범 때부터 12명으로 조직된 후원기도회 모임을 매주 한 차례씩 회원 집에서 모여 기도회를 갖고 있다.
이 일을 시작할 때 김 선교사는 어려움과 고충도 많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너무나 배타적이어서 속상한 일이 많은데다 아이들도 너무 말을 안 듣고 변화도 안 보여 울기도 많이 울었고 도중에 그만 두려고 할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김 선교사는 ‘내가 안 돌보면 저들을 누가 돌보나’ 하는 생각이 들어 또 붙잡고 다시 계속하곤 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제는 보람도 많이 느끼고 있다 한다. 사랑과 은혜로 이 일을 하니까 홈레스들이 조금씩 변화를 보이고 아이들도 서서히 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예배를 통해 믿음도 자라고 생각과 행동들에 변화를 보이면서 알콜이나 마약에 젖어있던 아이들도 서서히 건전해져 가고 있으며 말 안 듣던 대부분의 아이들도 점차 변화돼 가고 있다. 그 것이 큰 보람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남편 최문섭(57. 무역업)씨를 따라 1975년 12월에
미국으로 이민온 그는 3년 뒤에 퀸즈 한인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10년 후에 동부개혁장로회 신학교에 들어가 선교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할렘의 선교사로 부름을 받는다. 6년 전부터는 뉴욕장로교회에서 협력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두란노 서원에서 총무로 1년간 일을 한 적도 있다.
김 선교사가 그동안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항상 그를 격려하고 일손이 필요할 땐 와서 돕기도 하고 물실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은 부군의 힘이 컸다. 그래서 김 선교사는 남편을 제일 든든한 후원자로 생각하며 고마워하고 있다. 김 선교사의 말을 들으면 한인교회가 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전망이나 비전은 매우 밝다. 이제는 많은 한인교회들이 베푸는 교회, 섬기는 교회로서 이런 사역에 적극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선교사는 이와 관련, “지난 10년간 20여개 교회의 동참과 봉사자들의 아낌없는 참여로 이 사역이 커다란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며 “그러나 아직도 적지 않은 교회들이 내 울타리를 넘어 타민족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도와주는 그런 성숙함을 보이지 않고 있어 아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인교회들이 점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이웃을 돌보는 걸 목표
로 하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아직까지는 힘이 미약한 점이다. 그런 속에서도 그와 같은 사역을 하기위해 많은 교회들이 애쓰고 있으며 더 많이 하기 위해 눈을 돌리고 있다. 그래서 한인교계는 희망이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가정이나 자녀교육에도 게을리 하지 않아 슬하에 둔 2남1녀가 모두 잘 성장해 각자가 원
하는 방향으로 나가 모두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맏딸 크리스티나(27)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공부하고 소셜워커가 되어 현재 퀸즈 베이사이드 소재 주이시센터에서 테라피스트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주 토요일이면 할렘에 와서 어린이 사역 디렉터로 어린이들을 4년 째 돕고 있다. 둘째인 아들 다니엘(24)씨는 건축가로 활동 중이며, 막내아들 폴(22)씨는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 선교사는 앞으로 할렘에 선교센터를 지어 그들과 함께 기거하며 그들의 생에 희망과 용기를 주고 생활에 변화를 주는 그런 사역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청사진을 기도하면서 준비 중이다. 그는 진정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헐벗고 굶주린 할렘의 소외된 아이들과 홈레스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 시대 사랑의 천사요, 빛과 소금이 되는 참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닐까.
<여주영 논설위원>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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