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보가 기이하기 짝이 없다. ‘엽기적’이란 말이 떠오를 정도다. 모든 게 극비다. 그러더니 결국 모습을 나타낸다. 누런색 파카를 입은 채로 후진타오와 담소하는 모습이다.
경애하는 지도자의 중국 방문 에피소드다. 해외 나들이 때 행선지를 밝힌 적이 없다. 야행성 행태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로 어둠을, 비밀을 좋아한다. 이게 김정일 스타일이다. 그러니 그렇다고 치고 그 비밀을 유지해 주는 중국은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인가.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담론이 담론을 낳는 형식으로 수 년째 이어지는 질문이다. 거대한 소련제국이 무너진 후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새로운 적을 맞게 됐다. 첫 번째는 알카에다로 대변되는 이슬람이스트다. 미국이 당면한 적이다.
두 번째는 깡패국가들이다. 이란과 북한이다. 파키스탄도 언젠가는 그 대열에 끼여들 가능성이 있다. 하나같이 폭정체제들이다. 이들이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
또 하나의 세력이 있다. 중국이다. 적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아직은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 그렇다고 친구로 볼 수도 없다. 가치관이 전혀 다르다. 거기다가 이해가 상반된다. 그러니 잠재적 적성국으로 간주하는 게 낫지 않을까. 대체적인 미국의 시각이다.
이 중국을 놓고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무엇인가, 더 나아가 경제, 군사적 파워로 부상한 중국이 앞으로 어떤 행동을 보일지에 대한 확실한 그림이 안 보여서다.
과거의 족적이 미래행동의 단서가 될 수 있다. 역사라는 시각으로 볼 때 중국의 앞으로의 행태를 짚어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 중 흥미를 끄는 것이 예일대학의 조나단 스펜스 교수의 최근 논문이다.
그는 1592년의 한국전쟁, 그러니까 임진왜란 때 명(明) 왕조가 보여준 모습이 중국의 행동에 주요 전조가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명 왕조는 말기증세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한반도 침략사태를 맞아 원정군을 파견했다.
명의 조선출병이야말로 중국이 장래 어떤 행동으로 나올지 중요한 역사적 지표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를 직접 정복할 의사는 없다. 그러나 어떤 세력이든 한반도에 간섭을 해오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개입한다는 거다.
1894년 일본의 한반도 진출에 맞서 중국은 두 번째 개입에 나섰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지만.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후 중국은 또 다시 한반도에 개입했다. 유엔군의 북상을 저지해 김일성 체제를 존속시켜 준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이렇다. 중국이 ‘글로벌 파워’로서 어떤 행동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동북아는 전통적인 중국의 뒷마당으로, 6자회담을 이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400여년 역사의 흐름 선상에서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북한 투자액수가 급증하고 있다. 2003년만 해도 110여만달러에 불과했다. 그게 지난해는 9,000만달러 선을 넘었다. 그리고 후진타오가 북한을 방문한 지난해 10월 중국의 북한 투자는 앞으로 100억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북한 투자로 이익을 본 나라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여기서 등장하는 게 정치논리다. 경제적 이익을 바라서가 아니다. 영향력을 넓히려는 것이다. 구소련 출신 북한관측통인 안드레이 란코프의 설명으로, 중국이 노리는 건 두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는 김정일 체제연장이다. 통일 한국보다는 겨우 연명이나 하는 김정일 체제의 유지가 더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국내 사정과 맞물려 있다.
중국은 모순의 체제다. 공산주의 최우선 원칙을 고집하면서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갈등이 불안요인으로 누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공산주의 형제국의 붕괴는 결코 원하는 바가 아니다. 중국의 국내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더 음험한 시나리오도 제시된다. 유사시 직접 개입해 친 중국 정권을 세우기 위한 전초행위라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식 해법’(Chinese solution)으로 불리는 이 시나리오를 북한의 엘리트들이 마다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중국은 인권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됐을 때 그들이 저지른 반인류 범죄는 그러므로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크다. 기득권도 보호받을 수 있다. 때문에 남한으로의 흡수통일보다는 이 ‘중국식 해법’을 북한의 지배층은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왜 새해벽두부터 김정일은 중국에 갔나. 그것도 온갖 연막전술을 펴가며. 개혁개방을 위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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