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백남준이 떠났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너무 길다” 라는 새로운 표현의 비디오 예술을 남겨놓고 그는 떠났다.
내가 백남준 화백과 마지막 교류를 한 것은 지난 2003년 8월 뉴욕에서였다. 이민 100주년 기념 특별 전시회가 있던 당시 백남준 화백은 몸이 불편해 참석 못하고, 말 탄 사람(Man on Horseback)이란 설치작품만 보내와 같이 전시회를 했다.
지금 내 기억으로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무척이나 어리둥절했던 생각이 난다. 비디오 아트, 비디오 예술을 텔레비전에서 보고 너무나 생소했었다.
백남준 작품이 텔레비전에 소개된 것은 1972년 ‘지구촌 연주자’였다.
그가 작곡한 것을 첼로 연주자 샬로테 무어맨이 남자의 엉덩이를 끌어안고 첼로를 켜는 흉내를 내는 모습과 한국 여인들의 장구와 북치는 장면, 일본 텔레비전의 코카콜라 광고, 그리고 ‘지금의 파라다이스’란 연출 장르며, 여자 탭 댄서, 베트남 반전 미국인 시인 앨런 긴스버그가 자작시를 읽는 장면 등 여러 비디오 이미지들을 부분적으로 절단하고 종합해서 빠르게 바뀌는 장면들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었다.
인상적인 그의 작품으로는 뉴욕, 홀리 솔로몬 갤러리에 소장된 그의 비디오 조각을 들수 있다. 1990년 그는 미국의 시인 에드거 앨런 포의 ‘까마귀’가 담고 있는 불길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비디오 조각을 만들었다.
구식 텔레비전을 머리와 팔다리를 가진 사람모양으로 쌓아놓은 한편, 한쪽 손 같은 텔레비 전 위에 박제된 까마귀를 얹어놓았다.
그는 또 독일의 전형적인 행위미술가 요셉 보이스(1921-1986)가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해 한국에서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제사를 지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예술가의 마음에서 하나의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실현되어 형상을 갖추었다가 다시 기억에서 사라지고 망각되는 미술을 담고 있다.
실제 작업은 형식적인 것이고 아이디어는 미술을 만드는 기계라는 것을 실현시켰다.
1950년대부터 1990년에 이르는 현대와 탈 현대 미술사조는 개념미술, 행위, 설치미술, 비디오 아트로 넘어갔다. 이러한 미술 세계의 전환점에서 백남준은 획기적인 작가였다.
팝아트에서 콜라주가 유화를 대치했다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TV 진공관의 방사선 튜브가 캔버스를 대신했다.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미술은 추상미술이 지배하던 뉴욕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국제적인 현상이 되어 양식과 주제가 다원화되었다. 순수한 미술에서 생각을 시각화하고 정리하는 기술적 능력의 미술이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예술가의 한사람으로서 세계적인 혁신의 비디오 아트를 탄생시킨 예술가 백남준의 명복을 고개 숙여 빈다.
신헬렌 화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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