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지겨울 때면 산간벽지에 오두막을 짓고 자연의 한 올로서 살고 싶어진다. 내 형편에 낙향해서 귀거래사나 읊으며 살아갈 팔자는 못되지만 일손을 놓고 그냥 떠밀려온 곳이 이곳 Frazier Park의 솔밭이다.
여기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이 멀리서 보니 향나무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소나무임에 틀림없다. 소나무이면서도 늠름한 자태와는 아예 거리가 멀고 모양새가 볼품없는 몽달이 같고 솔잎 또한 자라다 만 것같이 솔잎길이가 일 인치도 못되는 데다 솔방울마저도 밤톨만한 것이 어쭙잖게 생겨먹어 꼴뚜기가 어물전 망신시키듯이 이 나무들이 이 산을 볼품없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솔잎을 따서 코끝에 대어보니 솔향만은 짙고 그윽하여 이 나무들의 진가를 알 것 같았는데 가을이 되어 솔방울이 벌어지니 그곳에서 잣이 쏟아지는 게 아닌가. 겉만 보고 판단한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Ranger Station에 가서 이게 무슨 나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Pinyon Pine이란다.
이곳에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도 심고 과수도 몇 그루 심어놓고 이들과 더불어 자연의 한 올로서 머물고 싶다. 벗들이 찾아오면 솔잎으로 차를 빚어 잣 알을 몇 개 띄워 대접하며 전성을 쌓고 싶다.
그동안 넓은 길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이젠 꼬부라진 길을 아주 느리게 세월을 좀먹으며 잡초들과 수작도 걸어보고 풀벌레들과 눈길도 마주치며 여유롭고 싶다. 디지털 시대, 스피드 시대에 뒤질세라 숨가쁘게, 자동차처럼 쏜살같이 내 닫는 것만이 이기는 삶이요 현명한 처세로만 알아왔지만 이 솔밭에 들고 보니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게 되니 시간을 축내며 삶의 여백을 만들고 싶다.
솔바람 따라 산길을 올라본다. 길가의 잡초들이 손짓을 한다.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들이 도란도란 정답게 가지 끝에 스쳐가는 바람 따라 노래를 부른다. 솔잎을 스쳐오는 솔바람에 코끝이 상큼하다. 흙을 밟아보는 즐거움으로 자꾸자꾸 올라본다. 오르다 보니 흙도 밟고 돌멩이도 밟고 낙엽도 밟으니 마침내 내 교만도 밟고 헛된 아집도, 고개 쳐드는 욕망도, 부질없는 영욕도 밟아버리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근심 걱정 모두 솔바람에 실려 보내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삶의 덧없었음이 허망해진다. 산마루에 올라서니 뭉게구름이 흘러간다. 구름 따라 눈길을 주니 나도 흘러간다. 마침내는 이 송림도 흘러간다. 솔개가 높이 떠 유유자적하니 비로소 내 마음도 한가로워진다.
이 산자락에 뿌리를 내리고 내 마음의 속알찌를 다 빼어 저 흘러가는 구름 위에 띄우고 싶다. 이 솔바람에 나의 한과 원망을 다 날려보내고 마음을 비워 신선으로 머물고 싶다.
김석연
<재미수필문학가협회원·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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