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일본을 잠시 다녀왔다.
여행을 하면 먼저 행선지의 간단한 언어를 익히는 것이 상식이지만 나는 일본을 몇차례 드나들면서도 인사 한마디 일어로 말한 적이 없다. 한자를 좀 알고 어릴적에 들은 것이 있어 조금 노력하면 간단한 회화는 할 수 있겠지만 매끄럽지도 못한 영어를 굳이 쓰는 이유는 일본이 우리말을 빼앗았던 민족감정의 앙금이 내 입에 일어 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도쿄의 워싱턴이라 할 수 있는 아까사까 인근 거리를 가다보면 듣기 거북한 확성기 소음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고함은 일본 극우파들이 외국인을 배척하며 일본을 지키자는 억지 캠페인이다. 그런데 이제 그 소리가 더 커지고 과격해 지고 있었다.
4월8일 아까사까에 있는 일본 전통 정원으로 유명한 뉴 오따니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길이 막히고 고막이 터질 듯한 악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으로 빠져 나와 길을 건너며 보니 ‘일본국토 고수’라는 현수막을 두른 두대의 버스와 일장기 옆에 ‘일본 장례식’이라고 쓴 검은 트럭 두대가 검은 관을 싣고 외국인들이 붐비는 뉴 오따니 호텔과 프린스호텔(영친왕 궁이 있었던 곳)사잇길을 차단하고 국토 고수와 민족 보존을 외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큰길을 건너면 스시집에서부터 한국식당, 중국식당들이 즐비한 그야말로 국적없는 먹자골목이 나온다. 아무리 그렇게 고함을 질러도 그 식당들이나 전자오락실, 음반가게 앞에는 대문짝 만한 배용준 등 한국 연예인들의 사진들이 붙어있고, 한국 CD나 비디오도 불티나게 팔리고 TV에서도 매일 한국드라마를 방영하는 한류의 급 물살을 그 누가 막을랴!
그뿐인가. 요미우리 야구팀에서 연일 홈런을 치고있는 이승엽 선수까지 인기 몰이에 가세하고, 김치와 더불어 푸짐한 반찬까지 주는 한국 식당도 그들에게 매력이다. 우촌이라는 설렁탕집에서 일본의 유명한 스모 선수를 만났는데 한국음식 맛을 알게되면 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한국 연예인들이 오면 일본 여성들이 구름같이 모이고, 한국 남성들의 인기가 좋고 신주꾸에는 일본인 노숙자를 돌보는 한국 교회도 있으니 일본 남자들이나 극우파들의 자존심도 상할 것이다. 그러나 지구상 어느 국가도 일본국토을 빼앗을 생각이 없고, 일본을 죽이려는 민족이 없는데 국토 보존 고수란 말과 일본 장례식이란 말이 무슨 뜻일까.
설마 악랄하게 강탈했던 식민지들을 모두 자기 영토라고 다시 빼앗자는 말은 아닐것이고, 전후 무조건 항복했던 아키히또 일왕 장례식을 지금 치르자는 것도 아닐 것이다.
결국 그 속셈이 대한민국 국토 독도에 있단 말인가. 남의 땅을 넘보며 일본국토 보존이라 억지 부리고 세계가 더불어 사는 현실에서 자기 민족을 못믿어 일본이 죽었다고 시민들을 자극하는 그 데모가 과연 자존심일까.
작년에 갔을 때는 살인에 연루된 중국인 용의자 때문에 중국인들을 범죄자 취급해서 중국 정부와도 마찰이 있었고, 이번에는 부산 깡패들이 범죄를 저리지른다고 연일 떠들고 있었다. 자기 민족만 우월하다는 유치한 자만심은 버려야 한다.
역사는 일본에게 진실을 배우라고 타이르고 있다.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기고 학대당한 국가 민족들에게 아니, 전 세계를 향해 상복을 입고 엎드려 사죄하는 말을 확성기에 대고 외쳐야 한다. 타민족을 배타한다고 자민족의 문화가 보존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존심은 남을 존중하는 건전한 양심에서 나와야 한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사과할 수 없는 아집은 자존심이 아닌 자격지심이다. 자존심은 스스로 판단 할 수 없고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인정되어져야 한다. 그래서 지나친 자존심은 자격지심이 되는 것이다.
이성호 시인·RV 리조트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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