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LA에서도 상영 중인 한국영화 ‘라디오 스타’를 제작한 영화사 대표가 올해의 여성영화인 상을 받았다. 영화사 ‘아침’의 젊은 여성 대표 정승혜씨다. 지난 14일 열린 여성영화인 축제에서 상을 받으며 그는 “밥상을 차린 것도 아니고 남의 돈을 받아 밥값을 치렀을 뿐”이라고 겸손해 했다.
“영화를 찍으면서 무슨 밥상?”하고 의아해 할 분들이 많겠지만 한국 영화인들 사이에서 ‘밥상’은 애정과 조크가 버무려진 인기 단어이다.
지난달 열린 대한민국 영화대상 시상식에서도 ‘밥상’은 여러번 등장했다. 신인여우상·여우조연상을 받은 추자현이 “잘 차려진 밥상에, 수저까지 챙겨줘서 맛있게 먹은 것 밖에 없는데…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고, 남우주연상을 탄 조인성이 말을 잇지 못하자 진행자인 안성기는 “할 말 없을 때는 밥상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거들어서 한바탕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밥상’의 ‘원조’는 배우 황정민이다. 2005년 영화 ‘너는 내 운명’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타면서 ‘밥상 소감’을 말한 후 그는 수상소감의 스타가 되었다.
“솔직히 저는 항상 사람들에게 그래요. 일개 ‘배우 나부랭이’라구요. 왜냐하면 60명 정도 되는 스탭들이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거든요. 근데 스포트라이트는 저만 받아요. 그게 죄송해요”
우리의 인생을 골조만 간추리면 ‘밥상 차리기’로 요약될 수 있다. 밥상을 차리고, 한솥밥을 먹고, 밥상에 마주 앉는 등 밥상의 행위로 개인적 인연들은 가닥을 잡고, 밥상에 올릴 밥을 얻기 위한 수고로 사회활동이 규정된다.
생명체로서 인간의 기본 조건은‘밥’이고, 그 ‘밥’을 보장하느라 우리는 올 한해도 고단한 노동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사회, 첨단문명, 전쟁, 혹은 예술도 근원을 짚어보면 ‘밥’이다. 식욕이라는 가장 원초적 욕망에서 파생된 다양한 소유의 욕망들이 출발점이다. ‘밥’은 생명이자 욕망이다.
그러니 내가 잘 먹을 수 있도록 누군가가 ‘밥상’을 차려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독교는 예수께서 차려주시는 ‘밥상’을 믿는 종교라고 해석해볼 수 있겠다. 자신을 희생양으로 내어놓음으로써 육체의 밥상을 넘어 영혼의 밥상까지 차려주신 분이 예수이다.
‘밥’에 대한 불안이건 영혼의 문제로 인한 고통이건 “밥상은 예수께서 차려주시니 우리는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믿음, 그리고 예수를 본받아 이웃을 위해 ‘밥상’을 차리는 사랑의 실천이 기독교의 본질이다.
지난 26년간 연말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해온 사람이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 때면 거리에서 100달러짜리 지폐를 나눠주는 산타로 유명했던 래리 스튜어트라는 사업가이다. 이제까지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었던 그가 최근 자신의 신원을 밝히고 USA 투데이와 인터뷰를 했다.
그가 이제까지 나눠준 돈은 130만달러정도. 물론 세금혜택 없는 진짜 나눔의 돈이다. 그런데도 그는 나눠준 돈에 대한 보상이 충분했다고 말한다. 춥고 배고픈 이웃들이 그가 차려준 ‘밥상’에서 정말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기쁨이었다.
“절망에 찬 표정들이 한순간에 희망의 표정으로 바뀌는 겁니다. 우리가 이 땅에 보내진 건 결국 그 때문이 아닐까요? 서로 돕는 것”
그의 이름이 공개되자 수백통의 편지와 수천개의 이메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가 이제껏 차려준 ‘밥상’에 대한 고마움을 비로소 표현하는 내용들이다. 아울러 그의 비법을 전수받아 ‘익명의 산타’가 되고 싶다는 희망자들도 여럿이 생겼다고 한다.
다 차려진 밥상을 받는 것만 즐거움은 아니다. 밥상을 차리는 것도 즐거움이다. 내가 밥상을 받는다면 누군가가 수고한 덕분이고, 내가 밥상을 차린다면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행운을 누린다.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사랑과 나눔이다. 내가 먼저 ‘밥상’을 차리는 연습, 개인적 인연의 울타리를 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밥상’ 차리는 연습 … 연습할 게 많은 계절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