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자꾸 아니라는데도, 여권의 오픈 프라이머리의 경선흥행을 필요로 하는 열린우리당 사람들과 또 항상 얘기꺼리를 필요로 하는 미디어에서 서울대 정운찬 전총장의 대통령 출마얘기를 한다. 또 여론조사에서도 출마얘기를 하지도 않은 사람을 범 여권후보로 끼워서 인기조사에 넣어 쥐꼬리 같은 숫자로 정 전총장 본인은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을 민망스럽게 한다.
사람이란 원래 생각이 없다가도 옆에서 자꾸 부추기고 비행기를 태우고 나면 멀쩡한 사람도 이상하게 될 수도 있으니 본인도 경선에 나와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길수도 있으리라 본다.
사실 한국에서 대학총장을 한번 해보고 나면 임기 후 교수로 다시 연구 활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력의 맛 얘기가 아니고 (대학총장의 권력이란 게 있지도 않지만)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할 마음도 되지 않고, 대학의 연구란 게 연구실로 돌아왔다고 금방 공부가 될 정도로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도 않다. 제대로 된 국제수준의 연구를 한다면, 한번 일 년이 넘게 연구에서 멀어지면, 다시 전공분야에서 제대로 된 연구를 하는데 엄청나게 해야 될 기본연구가 쌓이게 된다. 행정을 보던 이들은 물론 교육행정에 대한 일반적인 논문을 쓸 수는 있다.
필자는 왜 한국에서 문과출신으로 (법대, 상대, 사회과학출신) 서울대 총장을 지낸 이들 모두가 국무총리나 대통령 얘기로 이름이 오르내리는지 딱 해서 못 보겠다. 이젠 대학에 있던 이들은 대학에서 깨끗하게 평생 커리어를 마감하도록 그냥 둬둘 수 없는가. 본국에서는 누구든 그대로 좀 때가 덜 묻었다면 그 사람들이 꼭 망신을 하고 뒤에 허탈하게 되도록 만들어 버리는 집요한 요구들이 있다. 필자가 알기에 오로지 고대총장을 지낸 김준엽씨 만이 깨끗이 좋은 이름을 지금까지 유지하는 드문 예에 속한다.
왜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나 대통령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지 그 시대사적 배경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자유당과 민주당 정부까지는 이런 일들이 없었다. 서울대총장이 국무총리후보의 단골 리스트에 오르내린 건 군부독재 때부터였다. 군부독재에서는 정치든 경제든 모든 것을 자기들 메뉴대로 마음대로 할 때였으니까 국무총리 자리에는 자기들의 부족함 (여러 가지가 있겠다) 을 메울 깨끗한 인사들이 필요했고, 정말 하는 얘기로 얼굴마담으로는 서울대 총장이 가장 무난했던 상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세력이 있는 이들은 나중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으니 아무 세력 없는 대학총장들이 그들의 입맛에 가장 맞는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생들이 데모로 자기들의 일들을 방해하는 가장 큰 집단이었으니 그들의 스승들을 데려다 놓으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겠다 머리를 쓴 셈이다.
대통령, 그것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더구나 이제 국민들의 정치적 사회적 욕구가 너무나 엄청나게 분출되고 있는 이 글로벌시대에는 평생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부하고 준비된 사람들이 해야 한다. 우리 그동안 학습효과가 충분하지 않은가.
정 전총장을 진정으로 아끼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에게 곧게 얘기해 주어야 한다. 그에게 대통령 나오라고 얘기하는 이들은 나쁜 사람들이다. 그의 할 일은 따로 있다. 그가 가장 적합한 일은 경제와 정치에 관한 정책연구소 같은 것을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 해보는 것이 아닐까, 얼마나 좋고 보람된 일인가. 미국의 후버연구소나 브루킹스 같은 곳이 왜 한국에는 없는가. 왜 한국의 정책 연구소는 전부 정당 소속이나 국책연구소밖에 없는가. 가장 권위 있는 연구소가 민간연구소일 수 없는가.
서울대 총장을 잠재적 국무총리 후보나 대통령후보로 보는 현상이, 정치사회적 발전이 되는 앞으로는 아마 사라지지 않을까 필자는 예상하고 또 그렇게 바라고 있다. 몇 안 되는 대학의 인재들이 그렇게 정치판의 더러운 물에 혼탁하게 되어 버려지는 현상은 본인에게 뿐 아니라 장래 대학의 발전에도 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종열 페이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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