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시작단계에서 우리는 건조시킨 누렁 색 잎으로 12×18인치 크기의 식탁매트를 짜가지고 우리 고장 상인한테 팔았는데, 그 사람도 우리처럼 아마추어였다. 그래서 우리 사업은 발전이 느렸다. 스가와라씨네가 다시 우리를 구해주었다. 힐로에 사무실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공氏라는 사람에게 우리를 소개해준 것이다. 그는 호놀룰루(Honolulu)에 계열사를 갖고 있는 기민한 사업가였다. 공씨는 일단 우리 섬에서 만든 라우할라 제품을 호놀룰루로 보내서 마지막 손질을 하게 했다. 견직물안감이라든가 지퍼를 지갑, 꼬리표, 안내카드 등에 달고 예쁘게 포장을 하는 일이었다. 공씨는 바구니와 지갑, 특히 하얀 지갑을 선호했다. 그가 우리한테서 가져가는 것은 식탁매트는 몇 세트 뿐이고, 지갑과 바구니는 만드는 대로 털이 해갔다.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누군가 매트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바구니와 지갑 짜는 기술을 배워야 했다. 더욱 엄청난 문제는 생(生) 라우할라 잎을 표백하는 일이었다. 그 기술은 가진 사람이 절대 내놓지 않는 비밀이었다.
이태리인들이 집에서 만드는 리큐어(liqeur)제조법을 얻어내는 것에 비할 만한 난제였다.
어머니와 프랭크 오빠는 인정 많은 스가와라씨네 집을 찾아갔다. 오붓한 그 집에서 어머니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 동안에 오빠는 잘 들으며 관찰했다.
그때 스가와라네 식구들 중의 한 사람이 오빠에게 라우할라 잎을 좀 주면서 짜보게 했다.
참을성 있게 잘 가르쳐주었다. 그 집 아낙네들은 오빠가 빨리 기술을 터득한다고 칭찬하며 웃기도 했다. 15세 어린 나이에 짜깁기를 배우는 게 너무도 진지하고 민첩한데, 그 모습이 나이에 비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기도 않고 애처롭다는 느낌도 들어서였다.
짜깁기를 배우는 학생의 실력이 선생을 앞질렀다. 기술터득이 그렇게 빨랐다. 몇 개월 뒤 스가와라네가 우리 집 작업장을 보러 와서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 “아이구 딱해라, 딱해!”라는 것이었다.
오빠는 집에서 열두 살 난 동생 윤성이에게 바구니와 지갑 짜기를 가르쳤다. 윤성이도 배우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런데 가끔 지갑의 품질이 별로여서 다시 짜야했다.
오빠가 짜는 솜씨는 예술적이고 리듬이 있어서 라우할라 잎줄기가 오빠의 손길을 타고 앞뒤로 사뿐히 미끄러지는 듯했다.
오빠는 짜기를 하지 않을 때엔 라우할라 잎을 압축기를 이용해서 필요한 규격에 맞도록 껍질을 벗기거나 아니면 부드럽게 만들었다. 나는 식탁용 매트만 짰다. 복성이는 이제부터 헬렌이라고 부를 텐데, 그것은 본인이 자기 본명을 하도 싫어하는 걸 순이 언니가 알아서 골라준 이름이다. 아무튼 헬렌이란 이름은 예쁘고 복성에게 잘 맞았다. 아홉 살이 채 안 되는 나인데도 헬렌은 지갑손잡이를 깜찍스럽게 잘 짰다.
남한테 뒤질세라 전혀 불평도 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일이 끝나면 헬렌은 작업장을 말끔히 치우고 잠자리도 만들고 집안 청소도 했다. 일을 타고난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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