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해리는 라우할라 잎을 벗기고 유연하게 만드는 일을 번갈아 해가면서 여동생(해리에게는 제일 작은 누이)과 동참했다. 영흥이도 라우할라 잎을 말고 말리느라 계속 바빴다. 게다가 정원 일도 하고 농약 뿌리기, 잡초제거, 수확까지 맡아 했다.
이듬해 (1956년), 1943년부터 1956년까지 13년간 지속된 라우할라 사업은 마지막 직공(막내 여동생)이 집을 떠나면서 끝나게 되었다. 고되었어도 라우할라 사업을 했기에 우리는 빚도 갚고 또한 스가와라네 딸들과도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것은 특별한 축복이었다. 1956년은 잃어버리는 해이기도 했다. 수개월 입원 끝에 아버지가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1956년 5월 13일, 향년 69세를 일기로. 아버지 장례식에 오신 조문객은 백 명이 넘었다. 일본계 친구들, 하와이계 이웃들, 사업을 통해 알게 된 동료들, 그 밖에 또 많은 노소(老小)친구들 ..... 영안실은 화환, 꽃다발, 레이(lei)로 가득 찼다. 그것은 고국에 친지 한 사람도 없이, 또 정식 교육은 일 년도 못 받고, 혈혈단신 총각으로 이민와서 일가를 일군 분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아버지가 떠나신 그 해를 기준으로 볼 때, 세 자녀는 벌써 대학을 다 마쳤고 둘은 경영학 대학원생이었다.
그 아래 셋도 나중에 대학을 졸업했다. 아버지는 헌신적인 아내와 슬하에 팔 남매를 키우면서 충만한 삶을 살고 가셨다. 당신을 귀한 거주자로 받아준 이국땅에서 아버지는 고된 일이나 처음 시도해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 선견지명도 있으셨지만 <파나에바> 숲 속에서 하나의 이상향을 찾고 또한 수호천사 같은 분을 땅주인으로 만나는 행운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집안의 많은 일들이 다 잘 풀려나간 것이다.
제 7장 고향방문
1954년은 어머님께 감회가 깊은 해였다. 35년 전, 장차 사진신부될 여린 17세의 어머니는 몰래 집을 떠나면서 동생 종규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었다. 동생 역시 탈주자였다. 막내 동생 명구도 덩달아 집을 나갔으나 불과 수분 차이로 그만 누나와 형을 놓치고 말았다. 35년 전의 일이었다. (어머니의) 아버지는 그 후 얼마 안 되어 작고하셨다.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